모호한 ‘총수’ 정의…일감몰아주기 회피 등 대기업 악용 우려

대기업집단 ‘총수(동일인)’ 정의와 지정 기준이 모호해 기업 악용이 우려된다. 동일인을 누구로 지정하느냐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거래 제재 범위가 크게 달라지지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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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동일인의 모호한 정의와 지정 기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통상 총수로 해석되는 동일인은 공정거래법상 정의가 없다.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을 정의하며 동일인을 간접적으로 설명했을 뿐이다. 공정위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로 풀이하지만 ‘사실상 지배’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예컨대 ‘지분율이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와 같은 계량적 기준이 없다.

지정 기준이 불분명하다보니 사실상 대기업집단 판단으로 동일인이 지정된다. 대기업집단이 동일인을 직접 지정해 신고하고 공정위는 특별히 문제가 없으면 이를 인정한다. ‘사실상 지배’ 의미가 불분명한 만큼 공정위가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동일인은 공정거래법에서 각종 제재 대상으로 활용된다. 일례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대기업집단 동일인과 그의 친족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 등을 판단해 적용한다. 대기업집단이 자사에 유리하게 동일인을 지정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빠져나가는 등 악용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동일인 지정 문제는 작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부각됐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외형이나 언론 보도로 봐서는 (롯데그룹 실질적 지배자가) 신동빈인 것 같다. 정황으로는 경영권을 장악했다고 본다”며 동일인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조만간 여부를 발표한다.

대기업집단 동일인 변경을 검토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공정위는 매년 4월 대기업집단을 새로 지정하며 동일인을 공개하는 데 사망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변경 사례가 드물다.

공정위는 동일인 정의와 지정 기준을 별도 마련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의를 구체화 하면 이를 역으로 이용해 법적 제재를 회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대기업집단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동일인을 함부로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총수’의 상징적 의미, 그룹 내 경영권 문제 발생 우려 등을 근거로 꼽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일인 정의를 구체화 할수록 오히려 기업이 합법적으로 제재 대상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생길 것”이라며 “예를 들어 동일인 조건을 ‘지분율 30% 이상 소유’로 규정하면 지분율을 29%로 조정해 제재를 회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주요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현황(자료:공정거래위원회, 2015년 4월 1일 기준)>

2015년 주요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현황(자료:공정거래위원회, 2015년 4월 1일 기준)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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