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열람 요구에 기업이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폭넓게 인정했다. 공정위 조사 권한 축소 우려와 기업 권리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조사 방해·거부 혐의로 국내 대기업 S사 임직원에게 과태료를 부과한 것과 관련 대법원이 ‘과태료 부과가 부당하다’고 판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불공정 하도급 혐의 확인을 위해 사내통신망 열람을 요구했지만 S사 임직원은 영업비밀과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부했다. 공정위는 조사 방해·거부 혐의로 임직원에 과태료를 부과했고 임직원은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대법원은 공정위 열람권 부여가 공정거래법이 규정한 ‘필요한 최소한 범위 안에서의 조사’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 공정위는 전산자료 원본과 동일성 여부를 확인하고자 또 다른 임직원에게 샘플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2010년 2심에서 법원은 공정위의 한정적 전산자료 요구를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임직원이 전산자료 샘플을 제출하지 않는 대신 서류 출력과정을 촬영해 보여주는 등 진정성을 담보했다며 과태료 부과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법원 판결은 공정위가 특정 부분에 한정해 기업에 자료제출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법원 판결문을 근거로 공정위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 공정위 자료 조사 권한을 좁게 해석해 기업 악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지만 공정위의 과도한 조사를 예방해 기업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사건처리3.0’을 수립해 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갑질’을 스스로 예방하고 있다. 올해 시행을 본격화하는 사건처리3.0은 피조사업체 권익 보호, 조사절차 투명성 강화, 사건처리 과정 내부통제 강화 등 방안을 담았다.
공정위는 “그동안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등 실체법 선진화에 주력해온 결과 피조사업체 절차적 권리 보장에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며 “기업 위법행위는 엄정하게 조사하되 불필요한 기업부담은 최소화하고자 규제개혁 차원에서 사건처리3.0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