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업무가 시작되던 지난 4일 스마트폰 시장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인터파크가 KT M&S와 샤오미 홍미노트3를 중국 시장 출고가보다 10만원 이상 저렴한 6만9000원(16GB), 11만9000원(32GB)에 판매하려다 이틀 만에 중단한 것이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신청한 고객 사이에서는 항의가 쏟아졌다.행사가 KT 본사와 정식으로 논의하지 않고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행사라는 게 판매를 중단한 공식적 이유다. 업계는 국내 제조사나 일부 언론 등에서 대대적 할인행사로 중국 제품을 판매하는 행위에 불만을 표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홍미노트3 판매 중단은 단순한 헤프닝으로 볼 일이 아니다. 샤오미 제품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경계심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뛰어난 가성비를 앞세운 ‘메이드 인 차이나’ 스마트폰이 국내를 비롯해 세계시장 공습을 예고하고 있다.
◇화웨이, 1억대 클럽 가입= 중국 시장 스마트폰 점유율 1위, 세계 시장 3위로 올라선 화웨이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상반기 4820만대를 출하한 화웨이는 2015년 1억800만대로 출하량 1억대를 넘어섰다. 정식으로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 지 6년만이다.
화웨이가 LG유플러스를 통해 국내 시장에 출시한 초저가폰 Y6는 2주 만에 1만대가 팔려나갔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기존 중국 제품 성적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하다. ‘외산폰 무덤’으로 불리는 국내에서도 중국 제품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평가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사업 성장 비결이 중저가뿐만 아니라 P와 M시리즈로 이어지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성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시장 외에 서유럽과 남미, 북유럽, 중동·아프리카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잠시 주춤했지만 샤오미는 여전히 세계 스마트폰 시장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화웨이와 1, 2위를 다툰다. 샤오미뿐만이 아니다. 중국 내에서는 비보, 오포 등 신생업체가 급성장하며 애플 자리마저 넘보고 있다. 한때 독보적 1위였던 삼성전자는 중국 업체에 밀려 점유율 5위까지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5위는 화웨이(7.5%), 레노버-모토로라(5.3%), 샤오미(5.0%)가 차지했다. 이들 점유율 합은 약 18%로 애플(13.6%)보다 앞선다. 중국 시장에서는 상위 10개 제조사 중 8개가 중국(ZTE 포함) 업체다.
◇중저가에서 프리미엄으로=중국 스마트폰을 성장시키는 경쟁력 원천은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가성비’다. 프리미엄 위주 전략을 펼쳐온 삼성전자, 애플, LG전자와 달리 중국 제조사는 중저가 보급형 제품으로 기반을 닦았다. 20만~30만원 보급형 제품으로 중국을 비롯한 성장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다.
한때 성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중국 제품을 찾았다. 하지만 ‘싼 맛’에 중국 제품을 찾는 소비자는 점차 줄고 있다. 대표 제품이 샤오미 홍미노트3다. 172달러(약 20만원)이지만 옥타코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3GB 램, 5.5인치 풀 HD IPS LCD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배터리는 4000㎃h에 이른다. 스마트폰은 단순 재원만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20만원에 이 같은 하드웨어를 갖춘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제조사는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입지를 굳힌 후 프리미엄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화웨이는 P시리즈에 이어 메이트S, 메이트8 등 출고가 60만원 이상 프리미엄 모델을 연이어 선보였다. 기술 향상으로 ‘중국산=저가 제품’ 이미지를 벗고 수익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화웨이는 “3년에 걸쳐 9800만달러(약 1200억원)를 투자해 자체 이미지 센서 프로세서(ISP)를 개발해 메이트8에 적용하는 등 지속적으로 R&D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다양해지는 소비자 요구 충족을 위해 여러 분야 기업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성비에 기술력까지 뒷받침= 전통적으로 중국 스마트폰이 가성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인건비 덕분이었다.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보다 저렴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 국가 차원의 지원이 중국 제조사 성장을 거들었다.
최근 중국 시장도 인건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력이 뒷받침된 후에는 부품 생태계 영향력이 가성비를 유지시키고 있다. 제품 완성도가 높아지면 초기 개발 이후 부품을 교체하는 일이 줄어든다. 부품 제조사와 협상력이 높아지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장중혁 애틀러스리서치 부사장은 “중국 스마트폰 시장도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중국 업체의 해외 시장 공략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사는 올해와 내년 중국 업체와 가장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 30%를 소비한다. 2012년 129%, 2013년 86%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등 성장세가 둔화됐다. 이에 따라 중국 제조사의 해외 진출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화웨이는 2년내 스마트폰 세계 2위로 올라서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역시 포화 상태다. 출고가 인하가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유다. 업계는 세계 스마트폰 가격이 점차 낮아지는 반면 중국 제품 가격은 과거보다 오를 것으로 보여 30만~50만원대 중저가폰에서 주도권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