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에 진입하며 바닥을 기고 있지만 휘발유 등 제품가격은 강세를 타는 이례적 상황이 빚어졌다. 원유는 공급과잉이지만 정제 설비 증설이 많지 않고 세계 소비량도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악재로 작용한 유가 하락장에서도 실속을 키우고 있는 정유업계는 호기를 맞았지만 기름값 논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부담이다.
◇따로 노는 원유·제품 가격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와 국제 석유제품 가격 차이가 유지되면서 영업이익률이 개선되고 있다. 우리나라 수입 비중이 가장 높은 두바이유 월간 평균 가격은 지난 1월 배럴당 45.77달러에서 12월 현재 15.4% 하락한 38.7달러로 주저앉았다.
60달러를 넘어서며 연중 고점을 찍은 5월과 비교하면 40% 하락한 수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진영 국가와 미국이 감산 없는 랠리를 이어가자 공급과잉이 심화된 것이 원인이다. 최근 이란까지 원유 생산 재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는 등 원유는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히 우위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석유제품 가격은 큰 낙폭을 보이지 않으면서 원유와 가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싱가포르 현물 기준 휘발유 가격은 1월 배럴당 54.24달러에서 현재 53.74달러로 오히려 상승했다. 지난 11일 3.94% 급등하는 등 최대 수요철을 맞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저유가로 세계 정제설비 증설이 둔화된 반면에 소비는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제마진이 강세를 보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IBK투자증권이 추정한 우리나라 정유사 복합정제마진은 8월 배럴당 3달러대에서 이달 8.1달러까지 수직 상승했다. 정제마진은 원유와 석유제품 간 차이로 정유사 수익성 기준 지표다.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정유업계는 4분기 정유부문서 양호한 실적을 올린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선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이 4분기에만 각각 3000억~4000억원, 2000억원 내외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적 좋지만 소비자 시선은 부담
정유업계는 양호한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매번 되풀이되는 기름값 인상 논란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유가 하락에 따라 제품 가격도 낮아져야 하지만 정유업계가 이를 실제 가격에 반영하지 않아 폭리를 챙긴다는 시선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국제 제품 가격, 정유사 공급가가 공개되면서 소비자 시선은 유류세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유사 제품 공급가격은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약 7.27% 올랐는데, 이 기간 환율 인상폭이 5.7%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진폭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연중 최고치인 6월 2주 리터당 584.83원에서 11월 3주 연중 최저치인 405.84원까지 떨어졌다. 최고·최저치 하락비율은 30.6%에 달한다. 이 기간 정유사 공급가격도 리터당 638.7원에서 11월 4주 447.06원까지 하락했다. 하락비율은 30.0%로 국제 휘발유 가격과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들이 직접 휘발유를 사는 주유소 가격은 같은 기간 1584.63원, 최저치는 12월 1주 1456.66원으로 8%가량 하락하는 데 그쳤다. 소비자 체감 인하 폭이 줄어든 것은 63%에 달하는 유류세 때문이다.
전체 원가에서 제품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못 미치면서 제품 가격 하락 폭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여기에 하반기 환율 인상으로 소비자 체감 인하 효과는 더 줄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 저유가 상황에서도 경기가 어느 정도 뒤를 받치면서 수요가 회복돼 실적도 양호한 편”이라며 “이럴 때마다 정유사가 부당하게 수익을 올린다는 시선이 따라다녔지만 최근 공급가격이 공개되고 소비자도 기름값 구조를 알게 되면서 논란이 다소 잦아들었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