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이 본사 특별관리 아래 ‘윤리경영’ 지도를 받는다. 각종 사건과 구설수로 도덕성에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세계 IBM 지사 중 유일하게 한국만 관리대상에 선정됐다.
3일 한국IBM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본사 지침에 따라 한국지사는 각종 윤리경영 지침을 따른다. 하락하는 매출보다는 조직 관리에 중점을 둔다.
한국IBM 관계자는 “지난 7월부터 한국지사가 투명 경영을 위한 시범지사로 선정돼 여러 가지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윤리·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행위를 원천 차단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IBM이 수행하는 본사 지침은 각종 프로세스 ‘투명화’가 핵심이다. 대부분 영업 부문에 집중됐다.
우선 지난 7월부로 한국IBM 영업조직은 새로운 가격산정 시스템 ‘브렛(Bret)’을 사용한다. IBM이 자랑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과 유사하다. 제품 판매 시 적정 가격과 마진율을 책정해 준다. 수주를 위해 무리한 가격을 제안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특정 직원이 자신의 이윤을 위해 마진율을 조작하는 사례도 막는다. 가격정책을 시스템적으로 관리한다.
협력사 관리도 강화됐다. 올해 들어 한국IBM은 중견 SI업체 두 곳을 거래금지 업체로 지정했다. 그룹 회장이 비리에 연루돼 재판을 받는다는 이유다. 본사 법무팀이 직접 지시했다. 협력사에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했다.
협력사에 물건을 공급할 때도 상당히 복잡하다. ‘윤리서약서’ ‘윤리교육계획서’ ‘판매가격공개서약서’ 등을 받아야 한다. 한국IBM은 SI업체에 자신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다.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윤리서약서나 얼마에 최종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 것인지 가격을 공개하라는 각서를 받는다.
총판 재고 정책도 손봤다. 악성재고를 모두 없앤다. 실제 지난해 말부터 유닉스 서버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 때문에 올 1분기 한국IBM 유닉스 서버 매출은 70% 이상 떨어졌다. 남아 있는 재고 판매를 위해 신규 물량을 출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업조직도 재편을 검토한다. 현재 한국IBM 안에는 삼성, 롯데, KB국민은행, SK하이닉스 등 대형 그룹, 금융, 제조업을 전담하는 영업조직이 4개 있다. 다른 외국계 기업과 마찬가지로 소위 핵심기업만 따로 관리한다. 내년부터는 이를 없앤다. 핵심 기업도 모두 제조, 금융, 통신, 공공 등 산업군에 포함시킨다. 사업부별로 핵심 기업이 달라 전담부서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다. 절차의 간소화, 효율화를 내세웠다.
본사가 윤리적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그간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과 구설수로 IBM 도덕성에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납품비리 사건으로 한국IBM 직원과 국세청, 새마을금고연합회 등 관련자가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IBM 본사도 최근까지 미국 법원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KB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사업 과정에서 셜리 위 추이 전 한국IBM 대표가 고객사에 직접 이메일을 보낸 것도 구설수에 올랐다.
연이어 외국인 지사장이 부임한 것도 본사 관리정책 일환으로 풀이된다. 셜리 위 추이에 이어 제프리 로다 지사장까지 두 번 연속 외국인 지사장이 부임했다. 한국시장 이해도보다는 본사 정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한국IBM 관계자는 “본사에서 실시한 2004년 납품비리 사건 조사가 지난해 마무리되면서 올해부터 한국지사에 후속조치가 이뤄졌다”며 “매출목표를 채우라는 과거 압박이 이제는 사고를 치지 말라는 압박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