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전통산업의 e비즈니스화’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국내에 인터넷 보급이 활성화하고 전자상거래가 시작되면서다. e비즈니스라는 말이 없어지고 비즈니스라는 말로 소통할 때 비로소 e비즈니스가 꽃을 피우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요즘이 그렇다. 특히 농축산 분야는 e비즈니스 매개체인 정보통신기술(ICT)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2002년 9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제1회 벤처농업전문강좌’에 선 반백의 강연자는 “전통산업을 고부가가치 신지식산업으로 성장시켜 우리 농업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재편하는 일이 ‘벤처농업’이 해야 할 당면과제”라고 역설했다. 벤처농업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써가며 단호한 어조로 강의하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었다. 당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재직 중이던 이 장관은 농업에 e비즈니스를 접목해 농업 선진화를 주도했다. 지역 간 정보격차 문제 해소에 나서는가 하면 한약재에 전자상거래를 접목해 한약재 이마켓플레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11월 하순, 이 장관을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취임한 지 2년 8개월이 지났다. 어디를 바라보고 어떤 일들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는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달려왔다. 쌀 관세화·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중요현안으로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처음 세운 농정 방향에 맞게 가고 있는지, 얼마만큼 성과를 이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국민 행복과 활기 넘치는 농업 농촌을 이루자는 화두를 갖고 끊임없이 질문과 답을 하며 달려왔다.
-수없이 질문과 답을 고민하게 된 요인이 있었을 텐데.
▲고민의 바탕에는 평균 경작규모가 1.5㏊로 영세하고 노동집약적인 우리 농업 특성에 있다. 개방화와 고령화라는 국내외적 여건 변화 속에서 우리 농업이 살아남으려면 기술과 자본집약적인 고부가가치 농업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부가가치 농업으로 발전시킬 방도는.
▲장관 취임하기 전 33년 넘게 정부연구기관(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일했다. 농정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부터 모두 열심히 했는데도 농업계 신뢰를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했다. 이유는 돈 버는 농업, 수출 농업을 강조하면서도 정부 주도로 추진하다보니 농업인과 직접 소통하지 못한 채 정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부분에 방점을 뒀는지.
▲이번 정부가 출범할 때 우리 농정이 국민과 농업인의 신뢰 확보가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박근혜 정부가 가고자 하는 길이 어디인지 지향하는 바와 철학·비전을 세우고 사업내용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전략 로드맵을 만들었다. 이게 지난 2013년 10월 발표한 박근혜정부 농정 5년 계획인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이다. 박근혜정부 농정은 농산물 안정적 공급, 경쟁력, 소득, 복지, 일하는 방식 개선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을 위한 틀을 구체화하고 하나씩 성실히 실천해 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첫 번째는 농업·농촌의 본질적 가치인 국민에게 안전한 농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식량자급, 유통 선진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두 번째는 마을과 들녘 단위를 조직화하고 유휴 노동력을 6차산업화를 주도해 부가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해 농가소득 안정화에 기여하는 정책이다. 경영안정화를 위해 직불금도 늘리고 농업보험제도도 강화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농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ICT를 보급해 경쟁력 있는 전문경영체제와 기업농을 육성하고 들녘단위로 조직·규모화해 생산비를 절감해 양질의 농산물을 값싸게 생산해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려고 한다. 농업이 미래 성장산업으로 도약하려면 선도농, 중소농 대책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그동안 농업·농촌 발전을 위해 수고한 고령농을 위한 사회 안정망을 확충하고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등 체감형 농촌복지 정책을 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업관련 기관뿐만 아니라 농촌과 관련한 여러 부처와 협업해 규제를 완화하고 관계기관 간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
-농식품 분야와 ICT간 융합이 왜 중요하고 최근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이 있다면.
▲ FTA 등 개방 확대 분위기와 우리나라 농업이 당면한 영세한 농지소유 규모, 긴 겨울 동안의 농한기, 농업인구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려면 기존 토지·노동집약적 기술과 자본 집약적 고부가가치 첨단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적 수준 ICT를 농업 생산·유통과 농촌에 적용하면 농업 경쟁력을 높이고 농촌 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ICT를 비닐하우스·축사 등에 접목해 작물과 가축 생육환경을 최적으로 유지·관리해 노동력은 절감하면서 농업 생산성과 농축산물 품질을 향상시키는 스마트팜 확산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마트팜 확산은 얼마나 성과를 거뒀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확대할 계획인지
▲스마트팜으로 생산량을 높이고 노동력을 절감해 소득이 늘어난 사례가 전국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면 충남 부여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우듬지 영농조합법인은 스마트 팜으로 온실 안 온도·습도·이산화탄소·양분 공급 상태 등을 확인하고 작물이 자라는 최적 환경을 조성해 생산량이 75% 늘어나고 생산비용은 절반으로 줄었다. 성주 참외도 ICT 융복합 스마트팜 보급 후 생산량인 5톤에서 6.5톤으로 늘어나 매출도 200평 기준 1000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늘어났다.
스마트팜 보급 확대에 맞춰 농업인의 현장 활용능력을 높여 성과를 배가할 수 있도록 지원제도를 개선하고 현장지원도 강화하려고 한다. 현장에서 농가가 손쉽게 스마트팜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온실 및 축사 창문 자동개폐, 관수, 양액, 사료급이 장치 등 스마트팜에 필요한 자동화 장비 설치도 지원하고 있다. 농업인을 대상으로 ICT 활용 및 재배기술 교육과 컨설팅 등을 체계적으로 실시해 스마트팜을 활용하는 농가가 성과를 빠른 시간 안에 거둘 수 있도록 현장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 스마트팜 농가확산 방안이 있다면.
▲스마트팜에 운영에 필요한 센서·제어기 등 구성기기를 국산화하고 표준화해 보급 단가를 낮추면서 성능을 향상시킨 한국형 스마트팜을 보급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관련 시장이 확대되고 ICT 기업도 성장하는 선순환 산업 생태계가 조성된다.
이스라엘은 사막지역에서 점적관수 시스템을 개발해 세계적인 수출 농업을 이룩했다. 우리나라는 좁은 농경지, 긴 겨울이라는 여건을 감안했을 때 한국형 스마트팜 정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정부는 기후·온실·작물 조건에 맞는 한국형 스마트팜과 품목별 최적생육관리 소프트웨어(SW)를 개발·보급해 농가에서 쉽게 활용하고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스마트팜은 수출 품목으로도 유망할 것 같은데.
▲그동안 일본이 파프리카를 네덜란드에서 수입했는데 최근엔 우리나라가 일본 시장의 70~90%를 차지할 정도로 대체했다. 토마토·참외도 제2 파프리카로 만들려고 한다. 앞으로는 작물 수출뿐만 아니라 스마트팜 시스템 자체를 수출하는 데도 관심을 갖고 지원하려고 한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사막이 대부분인 중동 국가나 몽고 등 생육조건이 좋지 않은 지역이 스마트팜 유망 수출국이다. 가축을 스마트팜으로 기르면 어떻게 움직이고 사료를 어떻게 먹는지 파악할 수 있고 열 감지 분석으로 질병이나 임신여부를 파악해 관리해 줄 수 있다.
-유통분야에도 ICT를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물론이다. 유통분야에도 ICT를 접목하면 유통단계와 비용을 줄여 소비자들이 값싸고 좋은 농축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로컬푸드, 사이버거래 등에 적용해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행복하고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 농업 생산·유통분야와 농촌 복지·문화·교육 등에 ICT를 접목해 농촌 경제·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창조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TV홈쇼핑에서 고추를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고 들었다.
▲얼마 전 공영홈쇼핑에 고추를 판매하러 갔다. 올해 고추농사가 풍년이다 보니 산지 가격은 600g에 5400원으로 낮아졌지만 소비자가는 여전히 1만1000~1만2000원에 형성돼 있다. 산지와 가격차이가 배 이상 나는데 정보만 제대로 제공해도 수급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고추 주산지 8곳 농민과 지자체·농협 등과 같이 해서 600g당 7000원대 초반에 팔았다. ‘고추데이’ 기념으로 총 8시간을 편성했는데 고추와 고춧가루 포함해서 33톤, 5억원어치를 팔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네 배 더 팔았다. 여기서 가능성을 봤다. 덕분에 시골에 계신 노모한테서 “동네 어르신들이 좋아 하신다”는 칭찬 전화도 받았다. 작더라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아쉬웠음을 몸으로 느꼈다.
-축산 분야 ICT 융·복합화는 어느 정도 진전됐는지.
▲국내 모든 소는 귀에 전자태그(FRID)를 부착해 개체별로 철저하게 관리한다. 돼지도 어미돼지(모돈)은 소랑 같이 관리하고 나머지는 농장단위로 관리한다.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KAHIS)이란 게 있다. 모든 축산 농장과 사료공장, 오리 부산물 처리장을 표시하고 축산관련 차량은 등록해 GPS를 장착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AI)가 발생하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가축 이동경로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과거엔 역학조사를 한 후에 차단해야 했지만 지금은 다녀간 차량을 파악해 해당 지역을 집중 방역해 해결할 수 있다. 최근 강진·영암지역에 AI가 발생했을 때도 조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ICT 융합 덕분이었다. 앞으로 KT와 협업해 AI나 구제역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예고해 미연에 방지하는 정책을 펼 예정이다.
-박근혜정부 장관 가운데 가장 소통을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고 특히 온라인 소통 분야에서 독보적이라는 평가가 있던데 비결이 있는지.
▲박근혜정부 출범에 맞춰 농정방향을 구체화하고 농업·농촌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국민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범농업계,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는데 노력해 왔다. 빠르게 발전하는 미디어 환경에 발맞춰 정부 소통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농업인·국민과 소통하려고 애쓰고 있다. 2013년 친구 한 명으로 시작한 페이스북이 지난 10월 기준으로 4200명으로 늘어났다. 매주 1만여명의 사람들과 페이스북으로 우리 농촌·농업의 생생한 소식을 듣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앞으로 더욱 진정성 있게 소통하라는 뜻으로 알고 정책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소통과 배려로 농정신뢰 회복에 힘쓰겠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프로필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