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흔들리는 반도체 산업, 안정적인 R&D 투자가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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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은 반도체 수출 100억달러를 기념해 제정한 반도체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5년부터 반도체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반도체는 1990년 처음 수출 비중 1위에 올랐고 지난해에도 10.9% 수출점유율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이끌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하는 등 지속적인 지원 육성으로 반도체 산업은 고도성장을 이뤄왔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메모리시장 약 60%를 점유하는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도 국가성장을 견인할 첨단산업이다.

이러한 반도체 기술 발전을 근간으로 개발된 스마트기기는 이미 우리 생활 모든 것이 됐다. 사물인터넷, 스마트그리드, 스마트시티 등장도 집적도와 효율성이 높아진 반도체 역할이 크다. 반도체 기술 발전이 스마트 기기 첨단화를 견인하고 또 기기 첨단화는 반도체 집적화와 성능개선을 요구한다. 그런데 현재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 크기가 10나노미터(㎚) 근방으로 곧 더는 작게 만들 수 없는 근본적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돼 반도체 소자 집적도 향상을 통한 성능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반도체 개발을 위한 노력은 이미 수년 전 시작됐다. 그런데 최근 국제적 기술경쟁 상황이 녹록지 않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절반을 점유하는 미국은 지속적 투자와 기술력을 통해 입지를 더욱 굳히고, 선점기술 특허로 기술장벽을 높이고 있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지난해 6월 ‘국가 집적회로(IC)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면서 100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3위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인수는 미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승인하지 않아 좌절됐지만 최근 세계 4위 낸드플래시 메모리 업체인 미국 샌디스크를 인수함으로써 중국은 이미 우리 반도체 산업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혹자는 이러한 상황을 산업기술 구한말 시대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미국 등 열강 사이에서 풍전등화 같았던 조선의 운명이 현재 우리가 처한 반도체 기술시장 상황과 유사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더욱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중장기적 관점의 기술개발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적, 물리적 한계에 직면한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R&D 예산과 실패가 용인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연구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견인한 효자산업임에도 불구하고 R&D 예산에서는 오히려 소외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정보통신진흥기금에서 반도체 R&D에 배정된 예산은 2016년에 40% 축소된 356억원이고 2017년에는 예산 배정계획이 아예 없다고 한다. 예산이 없으면 신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좋은 인력확보도 어려워진다. 대학에서 반도체 분야 석·박사 배출이 줄어 우수한 인재 확보가 어렵다는 산업계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반도체 연구를 위한 안정적 연구 생태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반도체 산업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 R&D 전략을 수립해 정부는 지속적인 R&D 투자를 하고, 산학연은 협력연구로써 후발주자가 범접할 수 없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정부출연기관인 KIST도 차세대반도체 개발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2000년 초반부터 연구를 수행해 2000년대 후반부터 차세대 반도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스핀트로닉스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의 무한 반복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반도체 산업의 극심한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

세계 1위를 구가하며 최고 호황을 누렸던 조선 산업이 매년 수조원 적자를 내면서 구조조정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저가공세를 앞세운 중국 기업 수주경쟁이 우리 조선업계 중요한 위기 요인이라고 한다. 반도체도 똑같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편안할 때도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라고 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 기술혁신밖에 없고 그것을 위해서는 전략적인 중장기 기술개발 계획과 이를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R&D 투자가 간절하다.

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 연구소장 presto@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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