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은 드라마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클리셰다. 기억상실은 여러 이유로 나타난다. 알콜이나 약물에 의한 뇌기능 저하, 물리적 충격, 스트레스, 심리적 충격 등 기억이 사라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기억상실 원인은 물리적 충격이 대부분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는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이전에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전반적 지식과 학습능력은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기억을 잃기 이전 직업이었던 변호사 업무를 사고 이후 슬쩍 법률공부한 것만으로 척척해내는 모습을 보인다.
드라마와 달리 실생활에서 외상후 장애로 과거 기억만 모조리 잃어버리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억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뇌가 충격을 받았다면 신체적으로 죽음에 근접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애인있어요’처럼 다른 뇌기능은 멀쩡한데 기억만 사라지는 경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가벼운 뇌진탕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기억이 돌아오는 게 대부분이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꿔주는 해마가 손상되면 과거 기억은 멀쩡한데 최근 5~10분간 일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선행성 기억상실’에 걸릴 수도 있다. 영화 메멘토가 바로 이 선행성 기억상실을 소재로 삼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겪는 기억상실증인, ‘과음 후 필름이 끊기는 현상’도 바로 이 해마가 마비되어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알콜성 치매로 발전해 증상이 심각해 질 수 있다.
다른 기능을 유지한 채 기억만 잃어버리는 케이스는 심리 상황에 따른 기억상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해리성 기억상실’이다. 뇌기능 문제가 아닌 심리적 상태에 따라 기억을 불러오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에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과거에 있었던 행위 전체를 잊어버린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가 참혹한 전투상황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각한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기제로 기억을 봉인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뇌가 기억이 없는 척 하며 몸을 지키는 것이다.
기억상실 치료법은 특별한 것이 없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기억이 회복되도록 돕거나, 필요한 경우 약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최면술을 활용해 뇌 속에 잠자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시도도 기억상실 치료방법으로 종종 쓰인다. 어느 경우나 심리적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드물지만 외상으로 기억을 상실한 사람이 야구공에 맞아 기억을 되찾은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드라마 속 설정이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직 인간이 뇌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은 만큼 기억상실 치료 역시 계속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