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석유화학(현 한화케미칼) 등 한화계열사가 구 한화에너지 군납유류 담합 소송비용 등을 부담하게 됐다. 이들 계열사는 한화에너지 지분을 1999년 현대오일뱅크에 매각한 상태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는 지분매각 전 발생한 담합관련 소송비용을 한화계열사에 요구했다.
대법원 2부는 15일 현대오일뱅크가 김 회장과 한화 계열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오일뱅크는 1999년 한화에너지 주식을 사들여 합병했다. 인수합병 이후 한화에너지는 1998년∼2000년 현대오일뱅크, SK주식회사, LG칼텍스 정유주식회사, S-오일 주식회사와 함께 군납유류 입찰을 담합한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고 2000년 475억여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국가는 2001년 한화에너지 등 군납유류 입찰 담합으로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한화에너지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벌금 2억원 약식명령을 받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진술보증조항을 근거로 담합과 관련해 각종 소송을 치르며 변호사 비용과 벌금 등으로 지출한 322억여원을 물어내라며 김 회장과 한화 계열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주식양수도계약에는 한화에너지가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으며 계약 이후 발견돼 현대오일뱅크에 손해가 발생하면 배상한다는 진술·보증조항이 포함됐다.
1심은 공정위를 상대로 한 과징금 취소소송과 국가가 제기한 손배소가 진행 중이어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 그간 지출한 변호사 비용과 벌금 2억원 등 총 8억273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2심은 현대오일뱅크가 한화에너지 군납유류 담합 사실을 인수합병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문제 삼지 않았던 점을 고려할 때 뒤늦게 배상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현대오일뱅크도 한화에너지와 함께 군납유류 담합에 참여했던 당사자 중 하나여서 진술보증 위반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뒤늦게 책임을 묻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체결 당시 진술보증 위반 사실을 알았는지와 관계없이 손해를 배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서면으로 작성한 계약내용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며 “양측 계약서에는 진술·보증조항 위반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손해배상책임이 배제된다는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상 책임을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해 제한하는 것은 자칫 사적 자치의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배상액수는 파기환송심 심리에서 현대오일뱅크가 한화에너지의 관련 소송에 지출한 비용 등을 고려해 결정될 전망이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