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강길부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소프트웨어(SW) 개발 분야 고급인력이 해외에 유출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청했다.
강 의원은 당시 우리나라 SW 개발인력이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으로 옮겨가는 현실을 들며 정부가 그동안 SW인력 양성 방안을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고 개발인력 처우 문제에도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 인재 확보에 아낌없는 투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우수 SW개발자 처우는 국내와 비교하기 어렵다.
지난해 8월 한국 모바일 데이터 분석기업 파이브락스를 인수했던 글로벌 모바일 광고플랫폼 기업 탭조이는 최근 본사가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창수 대표와 개발진 4명 합류를 요청했다. 개발자 본인과 가족 이주에 필요한 제반 환경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글로벌기업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은 해당 기업이 보유한 기술뿐만 아니라 우수 인력 가치평가가 함께 이뤄진다. 기업 M&A 이후에도 피인수 기업 CEO나 주요 개발자가 본사 사업부문장이나 임원을 하는 사례도 인재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커리어캐스트가 선정한 유망직종에는 SW엔지니어가 200개 직업 가운데 1위 자리를 지킨다.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 웹 개발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종사자가 30위권 이내 상위 그룹에 위치한다. 반면에 변호사는 87위, 교사는 92위로 중위권에 머물러 있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엔지니어 평균연봉도 상위권이다.
◇SW개발 3D업종 ‘밤샘·야근 프로젝트’
국내 다양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교사나 공무원, 의사, 법조인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인재가 SW개발 직종을 기피하거나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고된 프로젝트 일정으로 야근과 밤샘이 반복되는 생활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SW개발자 노동량은 많은데 보수 수준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도 원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 실시한 ‘2013년 IT산업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IT노동자 연간 근로시간은 평균 2980시간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평균인 2116시간보다도 40%나 더 길다.
또 법정근로시간 한도를 초과해 주당 70시간 넘게 일하는 비율이 20%나 됐다. 초과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받는 노동자는 10%밖에 되지 않았다. IT종사자 가운데 근무시간, 임금, 복지후생, 직업전망, 사회적 인정 등 본인 직업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50%에 달했다.
인재 진로 결정은 결국 안정적이고 사회적 평판이 좋은 직업이다. 반면에 미래 사회와 기술 발전을 선호하는 직업이라는 이미지는 진로 선택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1990년대 인터넷 발달과 함께 벤처 창업 열풍이 불면서 우수 SW인재가 제2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등 세계적 기업 성공사례를 좇아 잇달아 창업에 나선 적도 있다. 하지만 벤처 열풍이 꺼지면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SW개발 환경에서 우수 인재의 SW학과 지원 기피와 대기업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SW학과 명암, ‘기피학과’ 오명 벗어났지만…
이공계 기피 현상은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컴퓨터 관련 학과와 전산학과 지원이 줄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포스텍 5개 대학 2011년 SW 관련 전공 재학생 수는 2009년보다 24.7%나 감소했다. SW 전문인력 이직률도 2010년 기준 17%로 크게 증가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 탄생 요람이 됐던 KAIST 역시 학부 입학생 중 전산학과를 택하는 비율을 조사한 결과 2000년 19.4%, 2001년 22.6%에 이르던 수치가 2002년에는 14.4%으로 하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듬해 2003년에는 12.2%로 다시 하락 추세를 보이더니 2013년까지도 5~6%대에 머물렀다. 벤처 열풍 몰락과 고된 프로젝트 개발 일정을 지켜봤던 우수 인재들은 SW개발 대신에 MBA과정 등을 선택하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이 우수 SW인재를 비롯한 이공계 인력 채용을 늘리면서 한 때 ‘기피학과’라는 오명을 썼던 SW학과 지원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대기업도 앞다퉈 SW개발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우수 인재 확보에 나서는 상황이다. 대학도 이공계 학과를 개설하고 모집인원도 대폭 늘렸다.
미래창조과학부도 ‘SW 중심대학 추진계획’을 통해 SW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올해 국내 4년제 8개 대학을 선정, 향후 6년간 연간 20억원씩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대학이 산업계 요구를 반영해 기업과 함께 문제해결형 교과과정을 개발·운영하고, 모든 SW전공 학생에게 산학협력 프로젝트 참여를 의무화하도록 지시했다. 기초·핵심 교육과 실습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 참여기업에서 장기 인턴십을 통해 실무경험 습득을 지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SW 근무환경은 전반적으로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대기업에만 채용이 몰리고, 유망 중견·중소기업조차 우수 인력을 채용하기 어려운 ‘인력 미스매치’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3 회계연도 재정사업 성과평가’ 보고서에서 고급 인력의 중소기업 기피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IT융합 서비스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2017년까지 약 8만명 SW개발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SW인력 문제는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SW시장 및 열악한 임금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공정한 SW시장 환경 조성을 위해 SW산업 고질적 문제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등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분석·주문했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중견·중소기업이 수행하는 SW프로젝트 대가산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SW개발자 업무환경과 연봉, 복지 등 처우가 개선될 수 있다”며 “더 많은 청년 인재가 중견·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벤처기업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SW문화 전반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11월 SW개발자 184명 대상 설문 조사 / 출처: SW정책연구소>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