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특별기획]<6>‘에너지 신산업’ 집중으로 기술격차 벌리는 전략 펴야

중국은 세계 에너지 22%를 소비하는 에너지 소비 1위국이다. 막강한 규모 시장에서 커온 에너지산업 경쟁력은 이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거나 앞서고 있다. 기존 에너지 시장 틀과 룰에서 중국과 정면대결을 한다면 힘든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이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고 예상치 못한 길을 가야 우리만의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에너지 신산업’을 주축으로 한 에너지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이 중국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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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에너데이터

◇에너지 산업 경쟁력 이미 역전…정면대결로는 승산 없어

에너지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 있는 분야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자원개발은 이미 규모 면에서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고 석유화학·발전플랜트 기술도 동등한 수준에 올라섰다. 수주 실적으로 보면 오히려 중국이 우리보다 앞섰다.

장벽을 치고 외부 진입은 막은 채 다른 나라 것을 따라하고 이를 다시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산자이 전략’은 에너지 산업에서도 주효했다. 각국 에너지기업에 가장 크지만 가장 진입하기 어려웠던 시장에서 중국기업은 기술과 실적을 쌓고 이제 스스로 장벽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폐쇄된 전력시장에서 중국이 쌓아올린 송전·발전 관련 전통 에너지 분야 기술 노하우는 상당하다. 2013년 기준 중국 발전설비용량은 12억㎾로 우리나라 12배가 넘는다. 비화석에너지도 4억㎾ 규모에 달한다. 한때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만성적 전력부족에 시달렸지만 지금 수급상황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 발전설비 산업은 우리를 크게 앞질렀다. 지금 에너지 업계 주류로 평가 받는 1.4기가와트(GW)급 원전과 1GW급 석탄화력 기술도 이미 보유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향후 중국과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될 에너지산업 분야로 원전(원자력발전소)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이후 제2 수출국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고 중국도 자국 내 원전 건설 실적을 무기로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중국 핵공업그룹(CNNC)과 프랑스 EDF가 컨소시엄을 구성, 영국 원전사업에 진출하면서 유럽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다.

진출 전략은 과거 대규모 차관을 동원해 진출대상국 정부 마음을 샀던 자원개발 때와 유사하다. 같은 방법으로 차관을 제공해 사업권을 따낸 뒤 관련 공기업이 진출하기도 하고 대규모 자금력을 동원해 프로젝트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을 동원한다. 유난히 노골적이지만 에너지 장치설비 시장에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통한다. 과거에는 공사에 현지 인력이 아닌 자국 인력을 고용하며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러한 악습도 점차 줄여가고 있다. 자국기업과 시장 보호정책으로 조성된 반중국 정서가 그나마 비집고 들어갈 틈이었지만 그 작은 약점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대규모 장치설비 시장에서 정면승부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기술력도 상당 부분 인정받고 있는데다 단가까지 싸다. 개발도상국이 프로젝트 발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고 해당 사업을 수주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자본 기반 영업을 할 수 없다. 그나마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인력교육과 기술이전 등에 국한됐다.

개도국 시장에선 대규모 자본영업을 펼치는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측면 공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중국기업과 동일 프로젝트에 수주경쟁을 하는 것은 수주 여부를 떠나 체력소모가 심한 만큼, 정면대결이 힘들다면 함께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이다.

중국 에너지 기업의 자국 내 송전·발전 인프라의 급한 불을 잠재우고 조금씩 해외로 나가려는 지금이 공동 시장개척을 위해 손을 내밀 적기라는 분석이다.

◇전통 산업은 협력하고 에너지 신산업으로 차별성 갖춰야

에너지 산업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연합은 중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다국적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은 최근 대형 장치설비 산업의 일반적인 트렌드기도 하다. 중국 CNNC가 프랑스 EDF와 함께 추진하는 영국원전 사업도 단독으로 수주에 나섰다면 중국 참여를 반대해 온 영국 원자력계 압력에 고배를 마셨을지 모를 일이다.

중국으로선 짝퉁과 폐쇄정책에서 시작된 반중국 정서를 불식시키고 그들의 경쟁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파트너사가 필요하다.

한국전력은 이 전략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화능집단공사와 협력방안을 논의, 올해 해외사업 공동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중국화능집단공사는 중국 최대 발전회사다. 양사는 인력·기술 교류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해외발전 사업 공동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협력노선 구축이 기존 틀에서 대중국 전략이라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만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해법도 있다. 최근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신산업이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신산업 중에서도 ICT를 융합한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자립섬, 스마트시티 모델이 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을 따돌릴 수 있는 가장 가깝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목한다.

스마트그리드만 비교해도 우리나라와 중국이 중점을 두고 추진했던 분야에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존 전력망에서 전력을 좀 더 효율적이고 똑똑하게 사용하고 공급단과 소비단의 양방향 정보소통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주력했다.

반면에 중국은 송전망 효율성에 집중했다. 넓은 국토를 커버하는 대규모 송전망의 안정적인 구축과 운영이 중국 스마트그리드 핵심이었다. 종합하면 중국은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분야에 경쟁력이 있고 우리는 구축된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쓰는 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다.

에너지 ICT 융합 부문에서 중국과 더 격차를 벌리기 위해선 지금의 스마트그리드 모델을 스마트 시티로 확장·발전시켜야 한다. 가전기기가 스스로 최적의 전력효율을 찾고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사용자 습관에 맞춰 전력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더 이상 상상 속 일이 아니다. 수십년간 ICT 산업 선진국 지위를 지키면서 쌓아온 노하우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초연결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대형 장치설비 산업에서 그들의 힘을 자랑할 때 우리는 여기에 협력노선을 구축하고 에너지 ICT 융합이 만들어갈 미래 선진 시장에서는 계속해서 격차를 벌려나가는 투트랙 전략을 펼쳐야 한다.

이성규 에너지경제연구원 해외정보분석실 연구원은 “중국은 전통 에너지 플랜트는 물론이고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우리를 압도하는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우리는 중국이 경험해보지 못한 에너지 ICT 융합 분야를 기반으로 스마트시티로 가는 길을 열어 선진 시장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원전 수출 추진 동향 자료: WNA(세계원자력협회)>

중국 원전 수출 추진 동향 자료: WNA(세계원자력협회)

<중국의 발전설비 현황 및 전망 (단위 : 만㎾, %) 자료: 외교부 글로벌에너지협력센터>

중국의 발전설비 현황 및 전망 (단위 : 만㎾, %) 자료: 외교부 글로벌에너지협력센터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