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하고 화려하다. 과하게 부릅뜬 눈, 차체 곳곳에 덧입힌 번쩍이는 크롬. 사실은 부담스러운 디자인이다. 하지만 충분히 소화해냈다. 전장 5m에 이르는 육중한 덩치에 잘 잡힌 균형감 덕분이다. 크기가 작거나 어중간한 차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디자인이다. 큰 차만이 가진 특권을 살렸다. 마치 일반인이 입기 어려운 옷을 전문 모델이 입고 뽐내는 듯한 느낌이다.
‘혼다 레전드’라 하면 과거 대우자동차가 판매했던 ‘아카디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2세대 레전드가 한국에서 대우 아카디아라는 이름으로 판매됐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카디아를 동경하며 자란 세대지만 2월 출시된 ‘뉴 레전드’에서 아카디아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세월이 흐르며 세 번의 대수술을 거쳐 5세대 모델로 돌아왔다.
대우차 최고의 기함으로 이름을 날렸던 명성만은 변함이 없다. 레전드는 여전히 ‘기술의 혼다’를 상징하는 플래그십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넓고 고급스러운 실내에서 고급차 자부심이 묻어난다. 곳곳에 고급 자재를 아낌없이 썼다. 앞뒤 좌석뿐만 아니라 운전대와 조작부도 가죽으로 감싸 촉감이 훌륭하다. 패널 테두리는 부위별로 우드, 메탈로 마감했다.
차 안은 겉모양보다 기능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조용해야 한다. 그 점에서 레전드의 실내 공간은 높은 점수를 줘도 아깝지 않다. 엔진음은 기본이고, 풍절음, 노면 소음까지 모두 훌륭히 잡아냈다. 웬만큼 고속으로 달려도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없다.
소음 대신 듣기 좋은 음악이 실내를 가득 메운다. 그 어떤 고급 세단보다 오디오 성능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오디오 명가 크렐과 4년여 협업을 거쳐 레전드 전용 시스템을 만들었다. 크렐이 카오디오에 자사 기술을 적용한 것은 이 차가 처음이다. 앞뒤, 중앙까지 총 14개 스피커를 썼다. 음역대별로 선명한 소리를 뽑아냈고 넉넉한 출력으로 음악을 재생한다. 강한 음압으로 차를 두드리기보다 사방에서 꽉 감싸 안는 소리 특성을 지녔다.
실내 기능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어라운드 뷰 모니터(AVM)이다. AVM은 마치 하늘에서 차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야를 제공해 요즘 고급 차에서 인기 있는 옵션이다. 레전드 AVM은 ‘멀티 뷰 카메라 시스템(MVCS)’이라 불린다. 일반적인 AVM 시야에 양 측면, 전방 사각, 후방 사각, 전후방 등 다양한 시야를 함께 제공한다. 무엇보다 직관적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어 그때그때 필요한 화면을 띄우기 편리하다.
아카디아는 한때 한국에서 가장 주행 성능이 뛰어난 차 중 하나로 꼽혔다. 레전드 주행 성능도 명불허전이다. 혼다 차세대 파워트레인 기술 ‘어스드림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3.5ℓ 6기통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탑재했다. 6단 자동변속기와 조합으로 최고 출력 314마력을 낸다.
고성능 스포츠 주행에도 무리가 없는 넉넉한 힘을 지녔다. 운전대 옆에 달린 패들 시프트도 운전자의 ‘달리기 본능’을 부추긴다. 6단 자동변속기는 실제 주행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준중형차까지 8단 변속기를 장착하는 최근의 다단화 추세를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조향 성능은 독보적이다. 세계 최초 4륜 정밀 조향기술 ‘P-AWS’가 조향 안정성을 극대화했다. 핸들을 꺾거나 급한 제동 시 뒷바퀴 각을 자동으로 제어해준다. 대형차인 만큼 민첩하고 날렵하게 코너를 꺾는 맛은 없다. 대신 어떤 도로에서든 묵직하고 안정적으로 차를 꺾는 맛이 있다. 대형차를 움직일 때 흔히 느껴지는 다소 답답하고 부담스러운 느낌은 완전히 덜어냈다.
‘주얼 헤드라이트’라 불리는 화려한 헤드램프, 단순함을 추구하는 최근의 유행과는 다소 동떨어진 디자인. 여러 모로 고집스러운 차다. 대신 그만큼의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고급차에서 개성을, 그것도 고급스러운 개성을 느끼고 싶다면 혼다 레전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혼다 뉴 레전드 주요 제원(자료 : 혼다 코리아)>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