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강국 노리는 중국]<하> 메모리 강국 코리아, 돌파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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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 딜을 제시했다. 세계시장을 향해 앞으로 공격적인 반도체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빠르게 축적하고 반도체 국산화 비율을 높이려는 중국은 기존 반도체 강자의 입지를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반도체 치킨게임의 높은 파고를 뛰어넘을 만한 거대한 자본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중국을 제압할 방법은 오직 ‘기술’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 TSMC를 첨단 미세공정에서 제압한 것도 ‘14나노 핀펫’ 기술로 먼저 제품을 양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비메모리부문에서 가장 먼저 선진 공정을 도입한 효과는 컸다. 애플과 퀄컴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 양산 물량을 확보하는 등 세계적 반도체 기업에 칩을 먼저 공급해 함께 경쟁력을 높이게 됐다. 16나노 핀펫플러스 공정 양산이 늦어진 TSMC는 고객 기업도 함께 제품 공급이 늦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최첨단 기술을 가장 비용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모든 반도체 기업의 지상 과제다. 제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도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적정 가격을 형성하지 못하면 이론에 그치고 만다.

기술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추려면 반도체 기업 혼자가 아닌 생태계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반도체 설계부터 소재, 장비, 후공정에 이르기까지 전 반도체 생산 주기에 걸친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첨단 반도체공정에 사용하는 장비는 아직도 대부분이 외산이다. 그나마 원익IPS, 테스, 이오테크닉스 등 국내 기업은 꾸준히 기술력을 쌓으면서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램리서치 등 해외 굴지 장비기업과 위상을 나란히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세계 유수 반도체 기업에 장비를 공급하는 글로벌 장비회사와 달리 국내 장비업체 고객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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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3위 메모리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의 생산라인. 사진=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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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반도체 소재 분야도 일본과 미국 기업 의존도가 높다. 유피케미칼, 원익머티리얼즈, 덕산유엠티 등 국산 소재 업체 활약도 꾸준하다. 하지만 첨단 소재 개발에 최소 7~8년 이상 꾸준히 거액을 투자하는 기존 강자들 뚝심을 따라잡기에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했다.

어플라이드와 도쿄일렉트론이 합병을 시도한 것처럼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려면 중견·중소기업이 대다수인 국내 장비·소재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들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야 첨단 기술을 개발할 수 있기에 생태계 조성에 강력한 힘을 보태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 인수합병이 절실한 시기다.

칩을 단품이 아닌 모듈 형태로 제공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완성품 제조사는 빠른 시간 내에 고성능 고품질 신제품을 개발하기 원한다. 제품 개발자가 쉽고 간편하게 제품을 구성하도록 반도체 기업이 필요한 여러 칩과 소프트웨어까지 모듈로 공급하면 유리하다. 반도체 기업이 칩 기술력뿐만 아니라 관련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갖추는게 숙제다.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도 변화한 시장 트렌드를 잘 뒷받침해야 한다. 단기간에 상용화할 수 있는 품목을 발굴해 지원하는 정부 과제도 필요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10년을 내다보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소기업은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실패한 연구 경험을 자양분 삼아 한 단계 도약하는 환경과 분위기를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

김형준 서울대 교수는 “기업은 속성상 단기 연구개발 과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성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꾸준히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국가별 수출 전망 (단위:백만달러) 자료=한국무역협회>

■반도체, 국가별 수출 전망 (단위:백만달러) 자료=한국무역협회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