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D램 산업 경쟁력을 갖추면 가장 걱정되는 게 ‘반도체 치킨게임’ 입니다. 중국이 가격으로 후려치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5년 뒤부터가 걱정입니다.”
한 반도체 전문가의 D램 반도체 산업 전망이다. 반도체 치킨게임은 지난 1980년대와 200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 구도를 완전히 바꿔놨다.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면 기존 판도를 뒤흔들 치킨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친 반도체 치킨게임 승자는 일본이다. 당시 일본 기업은 가격 인하와 기술력을 앞세워 메모리 강자 인텔을 위협했다. 결국 인텔은 메모리 사업을 철수했고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일본 기업이 독식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벌어진 두 번째 치킨게임은 한국 기업이 주도했다. 빠르게 기술력을 쌓고 공격적인 설비 투자까지 뒷받침한 한국 기업은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시장 속에서 전열을 갖췄다. 일본 엘피다, 대만 난야 등이 감산을 하고 독일 키몬다가 파산하는 등 세계적 반도체 기업이 출렁였다. SK하이닉스(구 하이닉스)는 경영난 속에서 어려움을 견딘 결과 세계 D램 2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세계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강 구도로 좁아졌다. 이제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히 수급을 조절하며 최상의 시장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치킨 게임이 다시 벌어질 만한 요소가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중국 참여는 시장 변화에 중요한 변수다. 중국 시장은 가격이 비싸도 고성능을 선호하는 트렌드로 바뀌었다. 때문에 자국산 D램이 저가여도 신뢰성이 떨어지면 내수 시장에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중국은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대규모 인수합병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후발주자 특성상 경쟁사와 비슷한 성능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야 살아남는다. 반도체 치킨게임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현지에 D램 설비를 새로 짓는 것도 치킨 게임을 재점화하는 요소다.
마이크론과 경쟁 중인 SK하이닉스는 당장 위험 범주에 놓인다. 지난 1분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D램 점유율 차이는 5% 남짓이다. 낸드플래시는 마이크론 20.6%, SK하이닉스 15.2%다. 삼성전자가 각각 43.1%, 35.3%로 독보적 1위인데 비하면 치킨 게임 악영향이 상대적으로 심각할 수 있다.
반도체 치킨 게임뿐만 아니라 거대한 중국 시장을 현지 기업이 잠식해 한국 기업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상황도 벌어진다. 마이크론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반도체 국산화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치는 중국 정부 지원으로 현지 반도체 기업이 힘을 받기 때문이다.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을 실제로 인수하기까지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이 마이크론 지분 20%를 보유한데다 첨단 3D 낸드플래시 개발에도 협력하고 있어 인텔과 합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 정부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만약 마이크론 인수가 성사되면 국내 반도체 기업 모두 큰 위기에 놓인다”며 “최고 신기술로 확실한 경쟁력을 만들지 못하면 금방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마이크론 인수 여부를 떠나 중국 정부가 거액을 들여 기술과 기업을 사들이고 전문 인력을 키운다는 강력한 의지 자체가 무서운 것”이라며 “중국의 강한 의지가 언제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으므로 낙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표. 기업별 2013년 중국 반도체 시장 점유율 (자료:PWC)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