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공정경쟁 저해 vs 소비자 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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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방송 결합상품 규제와 제도개선을 놓고 이동통신사업자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통사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번호이동이 줄어들면서 시장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합상품 마케팅을 강화했다.

무선상품이 없는 케이블TV 업계는 모바일 시장 지배력이 초고속인터넷, 방송서비스로 전이된다며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 무선시장 지배력이 결합상품으로 전이돼 이통시장이 고착화되고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SK텔레콤은 대다수 소비자가 결합상품을 우호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지배력 전이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맞섰다. 규제로 경쟁을 제약할 게 아니라 결합판매로 이용자가 더 많은 편익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면서 정부가 결합상품 제도개선 방안 마련에 나섰다. 조만간 발표될 방송통신위원회 결합판매 제도개선 기본계획(안)에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대 쟁점은 시장지배력 전이=결합상품을 둘러싼 논란의 최대 쟁점은 결합판매로 시장지배력 전이가 발생하는지, 이로 인한 약탈적 가격으로 공정경쟁이 저해되고 결국 소비자 후생이 저해되는지다. 시장 고착화 여부도 핵심 쟁점 중 하나다.

결합상품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진영은 이동전화 포함 결합상품 시장에서 SK텔레콤 지배력 전이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3년 SK브로드밴드를 포함한 SK군 가입자 점유율이 48%로 KT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자료를 근거로 들고 있다.

박추환 영남대학교 교수는 “SK텔레콤은 이동 다회선 결합상품 판매 시 초고속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지배력을 전이시켜 가입자 록-인(Lock-in)이 우려되고 있다”며 “SK텔레콤 스스로가 IR 자료에서 결합판매로 지배력을 강화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합상품 가입 시 단품가입 대비 약정기간 증가로 전환비용이 증가해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단품 가입자가 다회선 결합가입자 공짜 인터넷을 보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반대 진영은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SK군 점유율이 2009년(SK텔레콤 재판매 직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고 반박했다. 초고속인터넷 시장 SK군 점유율은 2009년 23.5%에서 지난해 상반기 24.7%로 1.2%P 증가했다. KT는 0.1% 감소, LG유플러스 0.4% 증가, 케이블업계 1.4% 감소 등 의미 있는 분석을 내리기는 어려운 수치다.

이경원 동국대학교 교수는 “2007년 시장지배적 사업자 결합판매 허용은 통신요금 인하 유도 관점에서 시행됐다”며 하지만 현재 결합상품 논쟁은 통신요금 인하보다는 시장지배력 전이나 시장고착화 등에서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케이블TV 업계 경쟁력 약화의 근본적 원인 파악을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통위, 소비자 후생 측면 포괄적 제도개선=방송통신위원회는 이 같은 논란이 일자 지난해 11월 결합상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TF는 부당한 시장지배력 전이를 방지해 공정경쟁 기반을 조성하고, 이용자 후생을 증대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다.

TF는 결합할인율 변경(동등할인율 도입), 경품 및 경제적 이익 제공기준 변경, 결합서비스 약관 개선, 위약금 부담 완화, 결합상품 경쟁상황평가, 해지 절차 간소화, 허위과장광고 가이드라인 제정, 결합서비스 판매 시 방송과 통신 회계분리 방안 등을 놓고 막판 의견을 조율 중이다.

정부는 이통사가 결합상품을 판매할 때 요금할인율이 30% 이하면 요금적정성 심사를 면제한다. 케이블TV 업계는 이통사가 특정서비스(초고속인터넷이나 방송)에 과도한 할인을 제공한다며 상품별 동등할인율 제공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현행 차등할인율 30%를 유지할지, 동등할인율을 도입할지를 두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결합서비스 약관 개선은 소비자 정보제공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 KT에만 결합서비스 약관이 있다. 다른 이통사와 케이블TV 업계는 단품별 약관만 있고 결합 약관은 없다. 별도 결합서비스 약관을 마련해 소비자가 특정 상품을 무료로 인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목적이다.

정부는 이외에도 장비 임차료와 설치비를 위약금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인하하는 방안도 논의한다. 또 결합상품도 이동통신 번호이동처럼 기존사업자에게 해지통보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지절차 간소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김용일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시장지배력 전이가 사업자 간 뜨거운 쟁점인데 이 부분은 경쟁상황평가를 강화해 체계적인 시장 분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방통위는 결합상품이 소비자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포괄적 범위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방통위 안, 시장에 미칠 영향은=케이블 업계 바람인 상품별 동등할인 도입은 이용자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용자가 지불하는(할인 받는) 금액은 같기 때문이다. 반면에 케이블 업계는 초고속인터넷이나 방송이 무료로 제공돼 단품 경쟁력이 저하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이동통신 가입자가 많은 SK텔레콤은 동등할인 도입 시 비용증가로 할인율을 낮출 수밖에 없어 결국 소비자 편익만 감소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결합서비스 약관 마련이나 위약금 대상 개선, 해지절차 간소화, 허위·과장광고 가이드라인 제정은 철저히 소비자를 위한 개선안이다. 명확하지 않은 정보 제공은 이용자 혼란과 피해를 가져온다. 이미 판매가 중단됐거나 한시적인 결합상품이 단품과 혼재돼 오인을 불러올 수 있다.

설치비나 장비 임대료 등 과도한 위약금 완화는 소비자 선택권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해지절차 간소화는 소비자 혜택을 한 차원 늘려 결합상품이 진환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허위·과장광고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 ‘무료 제공’ 등 이용자 기만 행위가 줄어들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방통위가 마련하는 제도개선 기본계획 안은 주로 이용자 피해를 줄이고 후생을 증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장지배력 전이나 시장 고착화를 평가하는 방안이 될지에는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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