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국익 고려한 감축목표 설정에 무게

정부가 2020년 이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담은 ‘포스트2020’ 안을 공개했다.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약 15~30%를 감축하는 4개 목표 시나리오다. 지난 2009년 확정한 2020년까지 BAU 대비 30%를 줄이겠다는 중기 감축목표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는 가장 강력한 4안 뿐이다. 나머지 3개 안은 이 보다 감축목표를 최대 절반까지 완화해 온실가스 감축이 버거운 산업계 현실을 배려했다. 아직 최종안이 결정되지 않은 만큼 논란은 진행형이다. 산업계는 중기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너무 과도해 이행이 불가능하므로 이번엔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미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번복할 수 없으며 온실가스 감축 문제에 있어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강력한 감축정책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명확히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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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축목표 대폭 줄인 1~2안, 부담 큰 3~4안

2020년 이후 신기후체제(포스트2020) 마련을 위한 국제사회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상반기 중 감축목표를 확정, UN 제출을 위해 4개의 감축목표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사회적 공론화 절차에 착수했다.

정부는 경제성장률·유가·산업구조 등 주요 경제변수를 토대로 BAU를 2020년에는 7억8250만톤, 2030년에는 8억5060만톤으로 잡았다. 전망기간 중 연평균 1.33% 증가하는 수치다. 지난 2009년에 전망한 결과와 비교하면 2020년 배출전망치가 7억7610만톤에서 7억8250만톤으로 소폭 상승했다. 부문별 배출전망은 2030년 기준으로 에너지 부문이 86.9%, 비에너지 부문(산업공정, 폐기물, 농축산)이 13.1%를 차지한다.

정부는 이 배출전망을 기준으로 우리의 감축여력과 GDP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효과, 국제적 요구수준 등을 종합 고려해 4개 감축목표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1안은 BAU 대비 14.7%를 감축하는 것으로 감축 후 배출량은 7억2600만톤, 2012년 대비 절대량으로 5.5%가 늘어난다. 산업·발전·수송·건물 등 각 부문별로 현재 시행·계획 중인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강화하고 비용효과적인 저감기술을 반영했다.

2안은 BAU 대비 19.2%를 줄이는 것이다. 감축 후 배출량은 6억8800만톤이고 이는 절대량으로 2012년과 동일한 수준이다. 2안에서는 1안의 감축수단에 석탄화력 축소, 건물·공장 에너지관리시스템 도입, 자동차 평균연비제도 등 재정지원과 비용부담이 수반되는 방안을 포함했다.

3안은 BAU 대비 25.7%를 줄이는 안으로 더 많은 비용부담이 필요할 전망이다. 2012년 대비 8.1%를 감축한 6억3200만톤이 목표다. 3안은 2안의 감축수단에 원자력 비중 확대, 이산화탄소포집·저장(CCS) 도입·상용화, 그린카 보급 등 추가적인 대규모 재정지원과 비용부담이 필요한 감축수단이 적용됐다.

가장 강력한 4안은 BAU 대비 31.3%를 줄이는 시나리오다. 2030년 배출량이 5억8500만톤으로 2012년 배출량보다 15%를 감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전비중을 추가 확대하고, CCS 추가 확대, 석탄화력발전소 LNG 연료전환 등 도입 가능한 모든 감축 수단을 포함했다.

정부는 4개 시나리오에 대해 공청회와 국회토론회 등 각계 의견수렴을 거친 후, 최종 감축목표를 확정하고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기여방안(INDC)’을 작성해 이달 말 UN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제사회 명분보다 국익 우선 결정해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포스트2020 시나리오에 대해 “국익을 우선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와 산업 생산이 비례하는 제조업 중심 성장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최종 감축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에너지다소비 제조업 중심인 산업구조 때문에 성장을 위한 최소한 에너지 소비 증가는 필수적이며 이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따라서 지난 2009년 설정한 BAU 대비 30% 감축목표는 너무 가혹하고 포스트2020 계획에서는 이행 가능성을 고려한 적절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국익을 고려한 감축목표 설정이 필요하다”며 “미국·중국·일본 등 주변국들이 자국의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셰일가스라는 대형 감축수단을 보유했고 중국은 원자력 확대,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는 점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본부장도 “포스트2020 감축목표는 국민 경제활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니 지킬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경제여건 변화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도록 탄력적 기준을 적용해 2020년 이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익을 우선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온실가스 감축목표 후퇴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이미 국제사회에 공표한 BAU 대비 30%라는 감축목표를 철회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온실가스감축 계획을 후퇴하면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체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지 않고 버티면 또 계획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미 선투자한 기업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당초 발표했던 목표 수준을 유지하는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김정인 중앙대학교 교수는 “정부 4개 시나리오는 과거와 비교해 (온실가스 감축 기여 의지가) 다소 미흡하다고 판단한다”며 “경제 여건을 고려해 감축목표를 다시 설정하더라도 BAU를 기준 삼지 말고 절대량으로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대부분 절대량을 기준을 정해 이행할 산업계가 헷갈리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절대량이 너무 일관적이라 산업별 특성 반영이 어렵다면 중국처럼 원단위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고려해봄직 하다”며 “발전·에너지 등 산업별 원단위로 감축목표를 설정해주면 각 산업에 맞춰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우 삼정KPMG 전무는 “정부 포스트2020 계획 감축목표가 높다 낮다를 논하기에 앞서 서로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했는지가 부족하다”며 “온실가스 감축 이행력을 높이려면 각각 입장을 내세우는 이유에 대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