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가난 스트레스는 DNA의 질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웃과의 네트워크, 강한 정체성은 가난한 사람에게 부자보다도 더 강한 DNA를 갖게 해 주었다.’
허핑턴포스트는 9일 도시빈민층이 가난으로 겪는 스트레스는 이들의 DNA에 상처를 입히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최신 연구결과와 함께 이같은 놀라운 내용도 함께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알린 제로니무스 스탠포드방문교수 연구팀은 11일자 저널오브헬스앤소셜비헤이비어(Journal of Health and Social Behavior)에 게재한 ‘인종민족성,가난,스트레스받는 도시인, 디트로이트지역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2009년 텔로미어 발견공로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블랙번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이 연구에서는 강한 인종 정체성을 갖는 가난한 1세대 멕시칸, 이웃과 잘 지내는 흑인빈곤층의 경우 수명을 예측케 해주는 DNA 텔로미어의 길이가 부자와 거의 차이나지 않았다는 결과도 도출됐다. 텔로미어는 DNA가닥의 끝에 씌워진 보호 캡으로서 유전자정보인 게놈(유전정보를 가진 유전체)을 품고 있다. 젊은 사람의 텔로미어 길이는 8천~1만개의 뉴클레오티드 길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각 세포의 분열과 스트레스로 인해 점차 짧아지게 된다. 이미 과학자들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통해 인간의 상대적인 수명을 예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연구진은 미국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디트로이트시 북서부 지역의 경제적 빈곤층, 가장 아랫단계의 중산층(lower middle-class)백인, 흑인, 멕시칸 등을 대상으로 연구조사를 실시했다.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가난한 계층 사람의 DNA 텔로미어가 유리한 환경에서 자란 동년배에 비해 더 짧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텔로미어는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늙어가면서) 그 길이가 짧아지며 이를 통해 수명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결과 디트로이트 북서부 지역 빈곤층이 인종과 무관하게 미국인 평균치에 비해 짧은 텔로미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특히 백인 빈곤층에서 이런 경향이 심하게 나타났다.
알린 제로니무스 박사(스탠포드대 첨단연구센터 방문교수)는 이같은 결과에 대해 “지독한 가난, 인종차별적인 이웃의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조사대상 그룹 안에서 인종민족성,수입과 텔로미어 간 연관성은 극적인 변화상을 보여주었다.
■디트로이트 백인 빈곤층의 가난스트레스 커...텔로미어 가장 짧아
텔로미어 길이가 가장 짧은 사람은 백인 빈곤층이었다. 이들은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의 경기 후퇴에 따른) 백인 이웃들의 도시권 밖 대거 이주, 일자리 감소, 자동차 노조원 이익 축소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 도시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디트로이트의 경제적 중하층(lower-middle class) 사람들은 가장 긴 텔로미어를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 흑인 거주자들의 경우 임금 수준 격차에도 불구하고 빈곤층과 중하층 간에 거의 똑같은 길이의 텔로미어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들에게서 드러난 텔로미어 길이 유사성의 배경과 관련, “가난한 계층과 덜 가난한 흑인 계층 간의 일상생활 속 모습은 비슷한 빈부격차를 가진 백인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차이를 덜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즉 이들 흑인은 빈부격차와 무관하게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소득격차와 무관하게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가난한 멕시칸들이 부유층 멕시칸보다 긴 텔로미어를 가진 이유는?
또다른 특이한 점은 이 지역의 가난한 멕시칸들이 고소득층 멕시칸들보다 더 긴 텔로미어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제로니무스교수는 조사 대상이었던 가난한 멕시칸들의 긴 텔로미어에 대해 “이들은 미국이민 1세대로서 민족공동체를 형성해 살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환경에서 자랐다. 때문에 뒤늦게 이민 와 미국문화와 융합한 고소득 멕시칸에 비해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들은 자신들의 자부심을 망가뜨리지 않는 일련의 지원 시스템과 문화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지난 해 이뤄진 프린스턴대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가 발견한 “스트레스 주는 환경은 9살 이전 어린아이의 DNA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조사 결과에 이어 나왔다.
앞서의 이 연구는 40명의 9살배기 흑인소년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미국립과학아카데미 논문집에 실렸다. 이 연구결과 빈곤한(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들이 훨씬 더 짧은 텔로미어를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학자들은 또 주변환경에 대해 유전적 민감성을 가진 소년들은 스트레스받는 사회환경을 경험한 후에 좀더 짧은 텔로미어를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민감성은 뇌-몸 사이의 정보를 연계시켜 주는 데 필수적인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도파민 경로와 관련된 유전자 변형체로 인한 것이다.
제로니무스는 앞서의 연구결과에 대해 “나는 이같은 발견이 9살배기의 어린이들에게서 나타난다는 데 대해 매우 놀랍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는 노화 가속,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마모를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을 모든 질병에 훨씬 더 취약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텔로미어(Telomere)란?
텔로미어란 DNA 가닥의 끝에 있는 보호캡으로서 게놈을 품고 있다. 이들은 세포분열 때마다 짧아진다. 이들이 한계 길이에 도달하면 세포는 분열을 중단하거나 죽어버린다. 이 인체 내부의 시계는 대부분의 세포가 실험실에서 몇 번이상 세포분열 증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전자신문인터넷 이재구국제과학전문기자 jk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