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은 줄지 않았다고 하지만 기초과학연구원(IBS)으로 인해 다른 곳에서 받아야 할 기초과학 예산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지난달 한국물리학회가 마련한 ‘2015 봄 학술논문발표회’ 정책세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행사에는 김두철 IBS 원장이 네 번째 줄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 의견도 내지 않았다. 세 번째 줄에 앉아 있던 IBS 소속 모 연구단장도 패널토의가 끝난 뒤 객석 의견 청취시간에 일어나 변론 보따리를 풀어놓을 듯했지만 기초연구의 질만 거론했다.
지난 3월에는 한림원이 우리나라 기초과학 현황을 분석하며 IBS의 현주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IBS를 재고하라”고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비 IBS 집중화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다. 1차 점화는 지난해 포스텍 및 서울대 교수가 했다. 올해 2차 발화점은 한림원과 박영아 원장이다.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 현황과 문제점, 개선방향 등을 짚어봤다.
◇IBS 논란 재연…“도대체 뭐가 문제?”
논란 핵심은 기초과학 연구비 배분이 일부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일부 중심에 과학비즈니스벨트와 IBS가 있다.
과학벨트에는 2012년 450억원, 2013년 1501억원이 투입됐다. IBS에는 2012년 1306억원, 이듬해에는 1710억원이 소요됐다.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추세다. 연구단 50개가 모두 선정되는 2017년께는 5000억원을 상회하게 설계돼 있다. 중이온 가속기 설치 및 운영 유지비까지 포함하면 7000억~800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비중으로 따져보면 과학벨트 및 IBS 투자액은 우리나라 R&D 투자비 5%대를 지속 유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재원은 정해져 있고 결국 이를 나눠쓰는 구조가 되면서 연구단에서 소외된 대학과 연구진을 중심으로 형평성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초과학 진흥 방법에 가속기와 IBS가 전부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실제로 기초연구 투자현황을 분석해보면 이해가 간다.
미래부와 교육부를 합친 기초연구지원사업 예산은 2009년 5944억원에서 2014년 9531억원으로 1.6배 증가했다. 그러나 IBS가 태동하던 2012년부터 기초연구사업 세부내용에 변화가 생겼다.
기초연구사업 가운데 대학교수 등에 주로 나눠주는 일반, 중견, 리더, 집단 연구사업 예산이 2011년이나 2012년 대비 줄어들거나 증가폭이 완연하게 수그러들었다.
일반연구사업비는 2014년 206억원이 줄어든 4289억원으로 나타났다. 리더연구사업비도 2012년 570억원이던 것이 2014년 514억원으로 줄었다. 집단연구사업비도 마찬가지로 1270억원에서 1240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중견연구사업비는 증가속도가 둔화됐다.
기초연구사업 전체 예산 증가속도도 IBS 태동과 함께 둔화됐다. 2009년 5944억원으로 전년 대비 30.5% 늘던 기초연구사업비가 2013년에는 9520억원으로 전년 대비 2.7%, 2014년엔 9531억원으로 0.0012% 늘었다. 11억원이 늘었으니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다.
한림원은 내친 김에 “IBS를 재고하라”는 주장을 펴며 정책입안자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 펴낸 기초과학연구비 현황 및 정책제안 보고서가 배경이다. “기초예산을 획기적으로 증액하지 않고 IBS에 투자한다면 결국 그동안 만들어 놓은 기초연구 토대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시각이다.
새로운 연구단 선정 중단과 기존 연구단 재평가 후 퇴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냈다.
윤순창 서울대 명예교수는 “5억원을 투입하는 기초연구실 20개나 15억~20억원짜리 SRC 5~6개가 IBS 하나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며 “IBS는 대학이 감당하기 어려운 100억원 이상 연구시설이 필요한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며 “IBS 연구단이 장비 사모으기도 급급한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초연구 패러다임 달라져야”
차제에 기초연구 분야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제는 관리·행정 중심, 성과우선주의 접근방식은 문제점이 있으니 이를 안정적 연구지원과 자율성 강화, 창의·도전 연구로 방향을 전환하자는 것이다.
사실 기초연구에도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투자 기본 틀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기본 논리다.
KISTEP은 기초연구야말로 창조경제 시대 아이디어 창출 근원이라는 논리를 폈다. 고부가가치 신산업 창출, 고급 일자리 창출 원동력을 기초연구에서 찾고 있다.
기초과학에서 상용화는 별개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기술 사업화로 가는 시간 또한 엄청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배경이다.
박영아 원장은 “기초연구와 성과우선주의는 상극”이라며 “성과주의는 도전적, 창의적 연구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라는 주장이다.
박 원장은 교육부 이공학개인기초연구지원사업과 미래부 신진, 중견, 리더연구자지원사업을 통합해 이른바 기초연구지원사업으로 재설계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학문 분야별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분야별 특성에 맞는 적정비중을 설정해 지원하는 방안 마련도 요구했다.
PM 역할강화도 주장했다. PM을 사업기획, 시행계획 등 부처 정책 확정단계에 의사결정자 일원으로 참여시켜 보자는 것이다.
일반 연구자지원사업 중심 한국형 그랜트 제도를 기초연구사업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랜트 제도는 연구 결과 보고서를 간소화하고 결과 평가를 하지 않는 제도다.
연구자 맞춤형 지원방식 도입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연구자가 필요에 따라 연구기간과 연구비를 정해 과제를 신청해보자는 내용이다. 현재 연구자는 예산 8000만원이 필요해도 과제 규모 자체가 1억원이어서 무조건 이에 맞춰 제안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올해 기초연구 투자 비중 37.1%”
정부는 오는 2017년까지 기초연구 투자 비중을 정부 R&D 투자 4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기초연구 투자 비중은 37.1%다.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기초연구비가 급속하게 증가했다. 기초연구비 연평균 증가율이 11.2%다. 같은 기간 정부 R&D 증가율 7.5%보다 3.7% 높다.
정부 R&D 기초연구 85% 이상을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이 쓰고 있다. 2013년 정부 R&D 전체 기초연구비 중 대학은 49.1%, 출연연은 37.7%를 쓴다.
대학 전체 R&D 예산 3조9700만원 가운데 기초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45.3%다. 출연연은 전체 R&D 예산 6조9900만원의 19.7%다.
IBS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연구비에서 기초과학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구조나 연구의 질, 시스템이 늘어나는 예산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를 설계했던 박현거 센터장은 “매년 연구단이 100억원씩 돈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며 “장비에 돈을 쓰지 않는 한 순수 연구비로 몇 억원을 쓰기는 버거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IBS 측은 “기초연구비에서 떼어내 IBS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예산으로 지원된다”며 “어쨌거나 기초과학 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