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해안지역을 택해 삶을 영위해 왔다.
오늘날에도 열사람 중 여섯이 바다 부근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왕성한 무역과 상업, 그리고 식량, 여행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동서와 남북이 이어지고 서로 다른 문명체계가 연결된다. 큰 해일이 일어나면 몇 십 년, 몇 백 년에 걸쳐 가꾸어진 바닷가 삶의 터전도 순식간에 폐허가 돼버리고 만다.
바닷가는 꿈꾸고 싸워온 바다와 인간의 융합 역사가 숨 쉬는 곳이다. 바다는 언제나 생동하는 변화를 연출하면서 늘 변화 없는 모습으로 거기에 있어 왔다. 바다의 거대한 힘은 언제나 인간을 압도했다.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았던 옛 사람들은 신에게 바다에서의 삶과 안전을 빌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 중국이나 우리나라 용왕과 같은 바다 신들은 그 자연의 위력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힘과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를 통해 보면 바다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 흥망성쇠를 가른 영욕의 현장이다. 바다에서 힘의 우위가 곧 국력의 상징이었다. 서양사에 있어 한 시대를 지배했던 강대한 제국은 해양진출을 통해 번영을 구가했다. 그래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보편적 경구로 통용된다.
장보고와 같은 인물에 의해 동북아 일대 해상권을 확고히 장악했던 역사를 우리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계속 후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한 시대의 짧은 역사로 단절돼 버리고 말았던 것은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온갖 괴물로 가득한 신비 세계로만 여겼던 바다를 보다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에 의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난 뒤 부터다. 콜럼버스와 마젤란으로 대표되는 대 탐험시대 개막을 촉발케 한 사람은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였다.
그의 동방견문록에 의해 서양 사람들에게 소개된 ‘신비한 동양’은 많은 유럽 탐험가들로 하여금 앞 다투어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게 했다. 이때부터 바다는 새로운 영토와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열려진 통로’가 됐다.
오늘날에 와서도 바다는 여전히 인류에게 번영을 이어줄 희망 영역으로 남아있다. 바다 이용기술이 상당히 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간의 해양자원 이용 정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육상 수렵단계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고기는 이미 남획돼 자원고갈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고 오염으로 말미암아 생태계도 크게 훼손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야생상태로 있는 해양생물자원을 단순히 채취해 이용하는 것에서 탈피해 이를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바다에 둘러싸여 살아온 우리 민족도 어쩔 수 없이 바다와 함께 살아왔다.
이어도는 바다살이 신산고초로부터 벗어나려는 뱃사람들과 해녀들의 이상향이었다. 인당수는 옛사람들에게 현실의 박복과 전략을 통렬히 역전시켜 줬던 구원과 부활의 해상 비상구였다. 우리에게는 거북선을 통해 세계 해전사에 우뚝한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있었다. 통일신라 위업을 이룬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왜적을 막는 용이 되고자 했다. 국토를 지키기 위해 바다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수중왕릉을 만들게 해 자신의 사후거처로 삼음으로써 역사의 무대에서 신화의 무대로 걸어 들어간 왕이 됐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지난 2014년 1월 울릉도 현포 읍에 울릉도독도해양과학기지를 연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울릉도 해양과 수산자원 개발, 독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울릉도 맑은 바다와 풍부한 해양 생물자원, 에너지 자원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개발하고 보전해야 하는 대상이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민족은 바다경영에서 다른 민족에 결코 뒤질 것이 없다. 이러한 민족적 저력이 바로 우리나라가 현재 세계 5대 해양강국을 바라보게끔 해주는 잠재력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바다에 대한 지배력은 세계에 대한 지배력으로 간주된다. 바다를 등한시 해왔던 과거에 우리나라는 늘 외세 침략을 받았고, 또 나라를 빼앗기기도 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바로 바다의 지배력을 키우는 길이다. 바다의 지배력(해상력)은 바다에 대한 보다 깊은 과학적 이해와 선제적인 국가적 지원에서 나올 것이다.
바다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바로 현장에서의 관찰이다. 오늘도 울릉도 연구실에서 바다를 현미경으로 보거나 또는 육안으로 등대를 보면서 새로운 희열을 느낀다.
김종만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해양과학기지 대장 jmkim@kio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