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년 전, 음악 MP3 파일이 담긴 USB 메모리를 주고받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USB 메모리에는 오래된 명곡부터 따끈한 신곡까지 수백개 파일이 담겼다. “돈을 내고 음악을 듣는다”는 친구는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됐다. 음악만이 아니다. 영화·만화·드라마까지 ‘PC로 이용하는 콘텐츠는 모두 공짜’라는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2015년 대한민국 모습은 다르다. “MP3 파일 어디 좀 없냐”는 말에 “요즘엔 찾기가 힘들더라” “맘 편하게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라”는 대답이 나온다. 극장에서 못 본 영화와 ‘본방사수’ 못 한 드라마는 아예 IPTV에서 소액결제를 거쳐 시청한다.
◇높아진 저작권 보호 수준
저작권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다. 창작자 시간과 돈이 투입된 저작물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13~69세 국민 33.3%인 1349만명이 불법복제물을 이용했다. 2012년보다는 0.9%포인트 증가한 수치지만 2008년(61.4%)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같은 기간 콘텐츠별로는 음악이 47%에서 20.3%로, 영화는 38.6%에서 19.4%로, 방송은 21.6%에서 14.1%로 떨어졌다.
2013년 불법복제물 피해 규모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008년(9659억원)의 3분의 1 수준인 3728억원으로 떨어졌다. 음악은 2396억원에서 1749억원으로, 영화는 2073억원에서 549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변화는 국제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까지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지정하는 지식재산권(IPR) 우선감시대상국(Priority Watch List)이나 감시대상국(Watch List)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며 높은 저작권 보호 수준을 인정받았다.
USTR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과거 지식재산권 강화가 필요한 국가에서 이제는 고품질·고기술 제조업과 최첨단 혁신 분야에서 정평이 난 나라로 스스로 변신했다”고 호평했다.
저작권 보호 강국으로 변신은 정부·민간의 꾸준한 인식 개선 노력과 제재 덕분이다. 정부는 저작권 보호 없이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도약이 어렵다고 판단, 그동안 저작권법을 수차례 고치며 보호 체계를 강화하고 각종 침해를 단속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발간한 ‘2013 저작권백서’에 따르면 그동안 정부는 저작권법 위반사범 수사를 확대하고, 온라인 재택 모니터링 요원과 불법저작물 추적관리 시스템을 확충해 취약시간대 온라인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지난 2012년에는 웹하드등록제를 시행해 불법복제물 유통을 크게 줄였다.
◇진화하는 침해 방식…악용하는 로펌
그동안 괄목할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개선할 부분도 많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저작권 침해에 대응하는 게 첫째 과제다. 정부 단속이 강화되며 우회 경로를 파고드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스트리밍 사이트다.
스트리밍은 내려 받기 없이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법이다. 인터넷 환경이 개선되며 이용에 불편이 없어졌고 콘텐츠를 ‘소유’하기보다 ‘쓰고 버리는’ 방식이 각광을 받으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스트리밍은 새로운 불법 콘텐츠 유통경로로 떠오르고 있다. 내려 받기 부담이 없어 이용은 수월한 반면에 단속은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PC뿐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몇 번 터치만으로 최신 드라마와 영화를 볼 수 있는 무료 애플리케이션이 적지 않다.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지난 2013년 중순 본격 확산되기 시작해 약 1년 만에 100여개로 늘었다.
문화부 관계자는 “서버를 해외에 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사실상 적발·처벌이 쉽지 않다”며 “사이트 차단이 하나의 방법이지만 관련 절차가 복잡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만 새로운 유형의 저작권 침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2013년부터 널리 확산된 ‘효도라디오’가 대표 사례다. 효도라디오는 1만~5만원 저가 제품으로 라디오와 메모리칩 재생 기능을 갖췄다. 메모리칩에 수천곡 불법 복제 음원을 담아 판매하면서 사회 문제로 불거졌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불법 복제 메모리칩을 유통한 업자에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창작 결과물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고자 하는 저작권법 취지에 비춰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결 취지를 밝혔다.
저작권법 위반을 악용하는 ‘법파라치’도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일부 로펌이 사소한 저작권법 위반을 문제 삼아 합의금을 받아내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법적 대응 역량을 갖추지 못 한 중소기업이나 개인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해 비교적 수월하게 합의금을 받아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시장에서는 다수 중소기업에 무차별 ‘경고장’을 보내 겁박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대안으로 6개월 내 100만원 미만의 저작권 침해는 형사처분을 면해주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악용 우려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대 여론에 막혀 처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또 다른 문화부 관계자는 “최근 권리자 측에서 과도하게 합의금을 요구하는 등 저작권을 악용하는 사례 때문에 저작권에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저작권은 보호도 중요하지만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필요한 만큼 IPTV와 같은 합법 플랫폼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