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이 모바일 혁명을 시작했다. 금융과 IT가 융합하는 핀테크 산업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을 4월 7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45층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실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금융이 도약하려면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핀테크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의 연구실이 회사에서 10분 거리여서 걸어서 전경련회관으로 갔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에 노란 개나리와 벚꽃이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었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실내 풍경이 흔히 보던 사무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책상 위는 말할 것도 없고 탁자와 의자 주변이 온통 신문으로 뒤덮여 있었다. 커피 잔을 놓을 공간이 없어 탁자 위 신문을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연구실에 놓인 두 개의 책장도 기사 스크랩과 쌓아놓은 신문으로 가득했다. 목록을 보니 미국과 일본. 중국과 같은 국가별, 산업별로 내용을 분류해 놓았다. 1990년대 신문사 조사부 모습과 흡사했다.
신문더미 속에서 그와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여 금융과 IT가 공생할 수 있는 핀테크 산업의 현재와 미래, 핀테크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웬 신문인가.
▲경제학은 현실 학문이다. 경제는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일부 학자들이 현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던데 그래서는 안 된다.
그는 집에서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종합지와 경제지, 영자지를 포함해 7개의 신문을 읽고 유형별 스크랩을 한다. 두 시간가량 분류작업이 끝나면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다. 날마다 20여명이 경제 현안에 관해 그에게 의견을 구하는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언론기고나 방송 출연도 잦다. 스크랩북 분량이 방대해 일정 기간 지나면 없앤다고 한다. 대신 컴퓨터에 저장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두 대다. 일이 많아 아침운동과 등산을 못한다. 3년은 이 일을 더 할 생각이다. 일종의 지식봉사다. 그가 보유한 경제 관련 스크랩 자료는 얼핏 봐도 신문사나 기업경제연구소 자료실 못지않은 듯했다. 일에 관한 열정과 철학이 없으면 귀찮아서도 오래하지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외환연구팀장,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동남아중앙은행 조사국장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아시아금융학회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 공동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건국대 특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학회는 언제 출범했나.
▲지난해 6월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금융계 20여명, ICT업계 20여명, 핀테크업계 20여명으로 60여명이 회원이다. 아직 협회가 영세해 별도 사무실이 없다. 지난해 10월과 12월 모바일 혁명과 한국금융산업의 미래와 인터넷모바일 뱅킹과 금산분리세미나를 열었다. 5월께 세미나를 또 열 생각이다.
-외국 핀테크 동향은.
▲외국은 핀테크가 일상화했다. 미국은 20년 전에 최초로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했다. 핀테크를 시작한 것이다. 알리바바와 애플,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업체들이 모두 모바일 결제시장에 진입했다. 이들이 모바일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를 보라. 지난 2003년 서비스를 시작한 알리바바는 지난해 뉴욕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알리바바 시가총액은 290조원이다. 삼성전자보다 훨씬 많다.
-우리 수준은.
▲우리는 시작단계다. 산업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는 인터넷 강국이지만 핀테크와 관련해 규제가 많다. 정부가 오는 6월까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과 핀테크산업 육성책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 정부가 이번에 적극적인 육성책을 내놔야 한다. 우리 금융산업 경쟁력은 후진국이다. 세계경제포럼은 한국금융산업 경쟁력을 세계 80위로 평가했다. 이는 아프리카 우간다 수준이다. 핀테크산업은 한번 뒤지면 선두를 따라 잡기가 불가능하다. 세계 모바일인구는 18억명이다. 데스크톱PC보다 많다. 새로운 금융시대가 열리는데 우리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뒤지면 선진국 진입을 기대할 수 없다.
-금융환경이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나.
▲금융과 IT의 융합시대로 변한다. IT를 단순히 기술로 생각하면 안 된다. IT를 모르면 금융을 못하는 시대다. IT를 알고 금융을 아는 사람이 핀테크 중심역할을 한다. 앞으로 IT 출신이 은행장이 될 것이다.
-융합 인력 양성이 문제 아닌가.
▲금융과 IT 융합시대에 맞춰 금융 전문가를 서둘러 양성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유일하게 건국대학교가 정보통신대학원에 금융보안 특화과정인 금융IT학과를 지난해 6월 신설했다. 나는 특임교수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한다. 국내 학부·대학원을 통틀어 하나뿐이다. 학부에도 금융IT학과를 신설해야 한다. 지금 금융기관에 전문 인력이 없다. 다른 학과 인력을 줄여야 신설이 가능하다. 이런 점을 개선하지 않으면 학부에 금융IT학과 신설은 어렵다.
-대안이 뭔가.
▲기존 은행 인력을 재교육해 모바일 전문 인력으로 전환 배치하는 일이다. 인터넷은행이 등장하면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상대와 거래를 하면 된다. 6개월이건 1년이건 재교육해야 한다. 전환교육을 하면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학교에 다니면 학비를 대주고 승진에 가산점을 주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인식체계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금융CEO들이 이 점을 절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터넷은행 도입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는데.
▲반대 입장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새 판이 등장하면 기존 판 위에 있던 사람들의 저항이 있다. 문제는 다른 나라는 핀테크로 간다는 점이다. 우리가 과거만 고집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국내 금융산업은 고사하고 만다. 핀테크는 국경이 없다. 대출과 송금이 자유롭다. 이게 현실이다. 이런 저항을 극복 못하면 국내 금융 산업은 죽고 만다.
-핀테크 육성을 위한 개선해야 할 법과 제도는.
▲우선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 지금은 산업자본이 은행지분 4%를 초과할 수 없다. 알리바바와 구글, 애플의 핀테크 진출은 모두 산업자본이 아닌가. 다음이나 네이버도 산업자본이다. 이들은 금산분리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진출에 뒤로 물러나 있다. 네이버가 라인을 국내에서 출시 못하고 일본에 출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낙후한 금융 산업을 육성하려면 족쇄를 풀어야 한다.
다음은 전자금융거래법이다. 지금은 자본금이 30억원이다. 핀테크 선두인 영국에서는 소액은 자본금이 필요 없다.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영국 투자청은 자본금이나 사무실이 없고 사서함만 있으면 창업을 승인한다. 신청하면 24시간 이내에 허가한다. 구글도 처음 주차장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벤처캐피털도 프레젠테이션만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 모든 건 시장이 판단한다. 미국이나 일본은 자본금이 2억원이다. 자본금 기준을 대폭 낮춰야 한다. 금융실명제는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모바일은행은 얼굴을 보지 않는 거래다. 보안시스템도 다른 방식으로 본인실명 확인을 해야 한다. 생체인식이나 홍채, 지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규제 완화는.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하게 놔두는 게 좋다. 1999년에 공인인증서를 도입했다. 그후 보안업체들이 고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도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액티브X를 폐지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과감하게 규제를 없애 핀테크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인프라 구축은.
▲금융환경에 맞는 다양한 금융플랫폼을 개발해야 한다. 지금 거리점포는 10년 후면 모두 사라진다. 지금 대면거래는 20% 정도다. 클릭에서 터치로 변한다. 은행이나 증권사도 사라진다. 앞으로 빅데이터 애널리스트로 거듭나야 한다.
-정부 측 반응이 궁금하다.
▲두 가지 반응이다. 하나는 대단하고 큰 도움이라는 반응이다. 다른 하나는 왜 자꾸 평지풍파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체 반응은 고무적이다.
-삼성페이의 경쟁력은.
▲지금 상태라면 애플페이를 이기지 못한다. 애플페이는 아이튠스로 그동안 준비를 많이 했다. 고객이 8억명이다. 광고수익이 엄청나다. 수수료가 없다. 삼성은 유감스럽게 고객이 없다. 그동안 하드웨어에 치중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등한했다. 광고가 없으니 수수료가 비싸다. 알리바바와 구글도 고객이 8억명이다. 구글은 지메일과 유튜브로 준비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삼성이 이 기업을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스스로 절대 고객을 만들거나 아니면 수억명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업체를 인수합병하는 일이다. 세계인이 홀딱 반한 업체를 인수하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우선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합당한 기술을 가진 업체를 인수해야 한다.
-좌우명은.
▲아이들에게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강조한다. 요즘 사람들은 지나치게 결과에 매달린다. 어떤 일이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초연(超然)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는 공자의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씀이다. 지식인이나 정치인, 언론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