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전파에 잔디 깎는 기계까지... "내 무선 주파수 침범하지마!”

무선 잔디 깎기 기계가 천문학자들의 원성을 샀다. 무선 주파수를 활용해 통신하는 기기가 늘면서 주파수 대역을 놓고 갈등이 심해지는 모양새다.

미국국립전파천문대(NRAO) 소속 과학자들이 로봇 전문 업체 아이로봇(iRobot)이 판매하는 무선 잔디 깎기 기계 판매를 반대하고 나섰다고 7일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과학자들은 이 기계가 천체를 관측하는 초고감도 전파망원경의 원활환 작동을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문대에서 주파수 스펙트럼을 관리하는 하베이 리스츠는 “전파망원경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본다”며 “왜곡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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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립전파천문대(NRAO) 소속 과학자들이 로봇 전문 업체 아이로봇(iRobot)사의 무선 잔디 깎기 기계 판매를 반대하고 나섰다. 무선 기기들이 증가하면서 주파수 대역을 놓고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사진은 NRAO가 운영 중인 뉴멕시코주 소코로 소재 개구합성망원경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미국국립전파천문대는 웨스트 버지니아주 그린뱅크에 구경 43m 크기 전파망원경을, 뉴멕시코주 소코로에 구경 25m 크기 전파망원경 27기를 Y자형으로 배치한 개구합성망원경, 애리조나주 키트피트에 구경 1m 크기 밀리파 전파망원경을 운영 중이다. 이 전파망원경들은 우주에서 희미한 신호를 잡아내 은하계 구조를 그리는 데 쓰인다. 실제 이 지역에서는 주파수 간섭 현상을 우려해 스마트폰을 비롯한 무선이동통신 전화기 사용이 금지돼있다.

아이로봇은 미국 MIT 인공지능연구소 과학자들이 세운 업체로 스스로 청소 방법과 흡입력 등을 분석해 청소하는 인공지능 청소기 ‘룸바(Roomba)’와 폭탄 제거 안전로봇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비콘으로 잔디 상태 등의 정보를 읽어 들이는 무선 잔디 깎기 기계를 개발하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이 기계가 무선주파수를 활용해 통신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아이로봇이 NARO 소속 과학자들이 우주 내 메탄올을 추적하는 데 쓰는 주파수대역을 활용하길 원하면서다. 메탄올은 우주에 널리 분포돼있어 천체 정보를 탐색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천문학자들은 FCC측에 이 무선 잔디 깎기 기계가 전파망원경 주변에서 최소 89k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만 사용돼야한다고 요구했다. 회사는 이 같은 주장이 과장이고 이들의 요구대로라면 언덕과 나무 등 주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어떤 로봇형 잔디 깎기 기계도 이 간섭 범위 내에서 작동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베이 리스츠는 “위치파악(Global positioning) 칩을 넣은 잔디 깎기 기계를 전파망원경 주변에서 작동시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회사는 대신 사용자 매뉴얼과 자사 기계에 “일반 사용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주거용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넣을 예정이다. 글렌 웬스테인 아이로봇 최고법률책임자(CLO)는 “교외에서 2피트 높이 잔디를 깎는데 활용하는 주파수가 전파망원경의 천문학적 발견을 방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ABI리서치에 따르면 로봇형 잔디 깎기 기계는 미국보다 잔디가 작고 조경 서비스가 비싼 유럽 시장에서 주로 판매된다. 지난해 4만7000여개의 로봇형 잔디 깎기 기계가 팔렸고 평균가격은 1779달러(약 194만원)다. 현존하는 로봇형 잔디 깎기 기계는 전부 유선이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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