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정책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흔들리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초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미국 경쟁력의 주체적 역할을 수행해 왔던 밸랩(Bell Lab)과 아이비엠(IBM) 등 대기업 중앙연구소가 더 이상 고위험 고수익(High-risk, High-return)의 장기연구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그 역할을 정부가 수행하는 것이다. 미국의 연구 방향은 국가적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 기초연구로 전환했다.
일본 또한 IT, BT, NT 등 개별 기술 R&D에 중점을 두었던 제1~3기 과학기술기본계획과 달리 제4기(2011~2015)부터는 그린 이노베이션, 라이프 이노베이션 등 사회적 요구 중심의 R&D로 기조를 바꾸었다. 유럽 국가들도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연구·혁신 프로그램 ‘호라이즌 2020 (Horizon 2020)’을 가동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은 기초연구를 통한 새로운 과학원리가 사회적 수혜로 이어지는 혁신의 기반이 되도록 R&D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연구(research)란 re와 search를 합한 단어로 다시 찾는다는 의미다. 2014년 세 명의 일본인 과학자가 질화갈륨(GaN) 기반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구현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결과가 발표되자 당시 연구진 사이에서는 기초과학 분야가 아닌 실용기술 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왔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들은 백색광을 만드는 데 필수인 빛의 3원색(적·녹·청) 가운데 기존에 구현하지 못한 청색 구현에 성공해 LED 상용화 시대를 열었다.
사실 청색 LED는 1923년 독일에서 실리콘카바이드(SiC) 기반으로 구현한 적이 있고 1972년 미국의 전자업체 RCA사가 질화갈륨(GaN) 기반 LED를 세계 최초로 구현,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기술은 에너지 효율이 낮아 상용화가 어려웠다. 기존 연구를 발전시킨 일본 연구진은 1995년 에너지 효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작고 가벼워 실제로 사용 가능한 청색 LED 개발에 성공했고 그 업적을 높게 평가받아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이 같은 일본의 사례는 우리나라 R&D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R&D는 ‘기술 개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업화 연계 기술개발(R&BD) 등의 후속 연구까지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100여년간 많은 주요 원천 기술이 논문 등으로 발표됐지만 이 중 상용화 단계로 진화한 기술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현재 기업의 R&D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데 비해 성공 확률이 점점 떨어지면서 심지어 대기업조차도 5년 이내 단기실적에 급급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은 마의 5% 기술 장벽을 뚫지 못해 국제 시장에서 일본과 중국 등에 시장을 빼앗기고 있다. 특히 대기업 몇 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업의 R&D 역량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우리나라는 박사학위 소지자의 약 22%만이 산업계에서 일하고 나머지 78%가 대학과 국공립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노베이션 주체인 미국은 40% 이상이 산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기업들이 세계 속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대학과 국공립연구소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품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많은 기술, 특허, 노하우 등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먼지만 쌓이고 있는 이 원천기술들을 정부 차원에서 발굴해 적극적으로 기술이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중소기업의 마의 5% 장벽 극복뿐만 아니라 대기업 경쟁력도 제고할 수 있다.
2014년 10월 산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2018년께면 자동차, 일반기계 및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산업이 중국에 따라잡힐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미 디스플레이는 사정권에 들어 왔으며 조선 및 석유화학 제품도 중국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인 기술 추월과 선진국 혁신에 근거한 기술 공세에 국가적 차원의 적절한 대응이 없다면 2018년 이후 우리나라 주요 산업 대부분이 중국과 선진국의 지배력 하에 있을지도 모른다.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R&D 원천기술에 대한 사업화연구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조원 한양대 나노융합과학과 석좌교수 jowon@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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