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철강·조선·석유화학 등 국내 주요 업종이 부진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단일 품목으로 연간 수출규모 600억달러를 돌파한 유일한 주인공인 반도체 산업이다. 최근 2년 연속 수출 1위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10.2%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은 한국경제 수출 견인차 역할을 하며, 올해도 한국경제를 이끌 대표 산업으로 꼽힌다.
반도체 산업 혁신을 이끌었던 일등공신 중에는 플라즈마 기술이 있다.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1차 전자산업 혁신을 이루었던 반도체 산업은 제조공정에 플라즈마 기술을 도입하면서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라는 새 집적회로 개발로 2차 전자산업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물질의 네 번째 상태라 불리는 플라즈마를 사용하는 플라즈마 기술은 미래에너지원인 핵융합 발전 분야뿐 아니라 국내 산업 큰 축을 이루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정 대부분에 적용되는 첨단 기술이다.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분야 핵심기반 기술로 활용되던 플라즈마 기술이 이제는 환경, 에너지, 의료 분야 등으로 기술 활용 범위를 확대해 가고 있다.
최근 플라즈마 기술을 적용한 또 다른 산업 혁신이 기대되는 분야로 농식품 산업을 꼽는다. FTA와 같은 급격한 환경변화를 맞은 농식품 산업은 어느 때보다 기술 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요구받고 있다.
정부는 첨단 과학기술과 융합을 통해 농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루고 농업을 국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농업에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접목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융·복합화해 새로운 6차 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농업에 ICT를 접목한 ‘스마트팜’처럼 농업 혁신을 위한 과학기술 융합이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첨단 융합기술 개발 촉매제로 여겨지는 플라즈마 기술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라즈마 기술을 적용한 농식품 융합기술(Plasma Farming)은 단편적인 요소기술 개발이 아닌 농장에서 식탁(Farm-to-Table)에 이르는 농식품 전주기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혁신 기술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단순히 농업 편의성 향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농산품 질과 생산성 향상, 농식품 안전성 확보를 통해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농식품 생태계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진정한 농업의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하다.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종자 발아 및 생장 촉진, 식물 병균 저항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뿐 아니라 농산물 신선도 유지 및 출하시기 조절과 살균 가공 등 농작물 수확 후 관리 그리고 농식품 안전 확보를 위한 친환경 살균 포장 및 세척, 조리 환경 및 식품 폐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농식품 분야에서 플라즈마 기술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기존 화학비료 및 농약을 이용한 화학농법은 최근 웰빙과 로하스 등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한 유기농법은 유해세균 및 박테리아 위험성이 있다. 반면에 플라즈마 기술은 안전하고 건강한 식탁을 원하는 국민들의 수요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대부분 산업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외부요인은 ‘시장 환경’이 아니라 ‘기술’이다. 그만큼 기술은 시장에 강력한 변화와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래 핵심 먹거리 산업의 기반인 농업에서도 기술혁신을 위한 선제적 연구가 필요할 때다. 반도체 산업에서 플라즈마 기술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농식품 분야에서도 플라즈마 기술이 ‘제2의 녹색혁명’을 이끄는 일등 공신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 선임단장 sjyoo@nfr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