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시대가 당분간 지속된다는 전망이 나오자, 최근 들어 유(油)자원 부족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기름 과소비’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낮은 연비 때문에 대형차 구매를 꺼리던 소비층도 저유가 덕에 대형차를 반기는 눈치다. 경차나 소형차에 비해 이윤을 많이 남기는 대형차 판매를 기대하는 자동차업체에는 이 같은 현상이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자동차 제작사 가운데도 친환경 자동차, 에너지절감형 자동차 개발에 주력했던 생산라인이나 관련 업계는 졸지에 불안한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전기차는 비록 구매가격이 높지만 기름 값과 전기요금 간 차이로 몇 년만 굴리면 본전을 뽑는다는 기대로 전기차 구매층이 서서히 늘고 있다. 그래서 저유가의 지속은 이른바 ‘전기차 거래 절벽’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한 국가에는 다양한 경제주체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한쪽이 좋아지면 다른 한쪽은 나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단기적으로 ‘약’이 됐지만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독’이 된 사례도 있다. 고통스럽던 고유가 시대도 잘 버텼으니 저유가의 지속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차원에서 볼 때 저유가의 지속이 경제주체들에 더 나아가선 생활공동체에 도움이 될 것이란 ‘착시현상’에 빠지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저유가로 중대형차 비중이 늘고, 차량이용 횟수나 주행거리가 늘어나면 당연히 대중교통수단 이용률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 기름 값이 떨어졌다고 해서 자동차의 생애주기별 총비용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문제는 대형차의 주행거리 증가에 따른 교통 혼잡의 증가, 환경 악화 및 사고 증가로 자동차 이용자의 경제·사회적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둘째, 친환경·고연비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이 뒤처지게 되면 지구온난화 방지와 같은 중장기적 국정과제는 추진력을 잃게 된다. 유가 변화에 따른 경기활성화 대책은 조기에 마련할 수 있지만, 이제 막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여가려던 우리나라 미래형 친환경 자동차기술이나 에너지 관련 신사업은 동력을 상실해 아예 현재의 시장 지배력 마저 잃게 될 가능성도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마지막으로 저유가에 따른 생필품 가격인하에 따른 정책 체감효과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주유소 사례를 보자. 한동안 오르기만 했던 국제유가가 어느 순간에 하락했어도 소비자 휘발유 가격이 그만큼 인하되었거나, 특히 생필품 가격인하를 체감할 정도로 가격정책효과가 있었는가에는 의문을 품고 있다.
저유가 구조에 의해 생성되는 외부효과(externality)를 먼저 파악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저유가’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대형차 증가에 따른 경제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다면, 저유가로 발생되는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 이용 및 보유 관련 과세는 높이고, 친환경 자동차 생산량에 비례해 법인세는 감면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차량의 크기에 따른 세금 차별은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으로 곤궁에 처할 소지가 있으므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과세기준을 적용하면 무역마찰도 피할 수 있고,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미래경쟁력 제고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황상규 한국교통연구원 본부장 skhwang@ko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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