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적자가 심각한 서울적십자병원을 대상으로 개선계획 수립 컨설팅을 진행한 결과 의약품과 진료재료 등의 구매대행을 도입하라는 해결방안이 제시됐다. 당시 서울적십자병원은 재료비와 관리비의 65.3%를 차지하는 구매 절차에 신규업체 참여가 부진하고 형식적 경쟁입찰 위주로 진행돼 연 3억원의 손실이 발생됐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해 의약품·진료재료·검사재료·의료장비 대상 구매대행을 진행해 전년 대비 7.7%인 23억원의 구매예산을 절감했다. 총 1088품목의 의약품은 6.8%인 13억원을, 진료재료는 10%인 8억원을, 검사재료는 4000만원을 줄였다. 고가 장비가 포함된 의료장비는 13.2%를 절감했다.
공공의료기관 중심으로 대형 의료기관이 기존에 자체 수행하던 구매가 외부업체를 통한 통합구매대행(GPO) 사례로 바뀌고 있다. 아직은 전체 대형 의료기관 중 일부만을 도입하는 초기단계지만 구매원가 절감과 리베이트 관행 근절 등에 효과가 입증되면서 GPO 도입을 검토하는 의료기관이 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재정 누수를 막는 방안으로 제시돼 GPO 도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제도개선과 의료계의 프로세스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국내 대형병원 중심으로 GPO 도입
대형 의료기관의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GPO 도입이 원가절감의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됐다. 의료선진국에서는 병원경영 효율화와 건보재정 안정화를 위해 GPO 도입을 제도적으로 권장, 구매·물류 혁신을 추진한다.
국내는 2000년대 초반 GPO 개념이 전해졌지만 사실상 도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의료기관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일부 공공의료기관 중심으로 도입이 본격화되는 추세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과 가톨릭중앙의료원·건국대병원·삼성서울병원·한양대병원이 GPO를 도입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인하우스 형태로 GPO 제도를 운영한다.
GPO 대상은 의약품·진료재료·검사재료·의료장비 등 다양하다. 의료기관은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을 GPO업체를 통해 다른 병원과 공동으로 구매한다. 상당수 의료기관은 내부 전자의무기록(EMR)시스템 중 의약품과 각종 재료 관련 데이터를 GPO업체의 주문·배송시스템과 연동해 실시간 배송체계를 갖추고 있다.
GPO업체 관계자는 “GPO 구매·물류체계는 병원 내부에서 수술 계획이 수립되면 일정에 맞춰 관련 재료를 맞춤형으로 포장해 수술실 앞에 전달하는 수준까지 진화됐다”며 “시스템 연동을 통한 실시간 배송체계가 GPO업체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GPO로 실시간 물품 배송체계 구축
GPO 도입 효과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게 구매원가 절감이다. 의료기관은 항목별, 공급사별로 의약품·진료재료 등을 도입하면 공급사에게 제시받는 가격이 적정한지를 알 수 없다. 다른 의료기관의 구매가격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는 의료장비 구매는 더욱 그러하다. 구매 가격이 높아지는 이유다.
GPO를 도입하면 여러 의료기관의 구매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GPO 대행업체는 다수 의료기관과 공급사로부터 물품 요청과 공급을 받기 때문에 가격 비교가 가능하다. 의료기관은 가격을 비교해 동일 효능 대비 낮은 가격의 물품을 구매하면 된다.
리베이트 관행 근절 등 투명성도 높인다. GPO 제도는 전자시스템 기반으로 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의약품이나 검진재료 등 물품 공급업체 관계자를 면대면으로 만날 필요성이 없다. 낮은 가격으로 구매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리베이트가 사라진다. 모든 구매와 공급은 전자시스템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투명해진다.
구매·배송이 전자시스템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각종 물품에 대한 재고관리가 손쉬워 진다. 과거 구매·배송이 품목별로 이뤄질 때는 의료진이 직접 창고 등에 쌓인 물품 관리를 수작업으로 직접했다. 비효율적인 업무처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대형 의료기관 관계자는 “GPO 도입 후 진료부서의 요청을 즉시 반영할 수 있어 환자 치료중심의 병원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 제도개선과 병원 프로세스 혁신 필요
GPO 도입 효과 극대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보험급여 품목 구매가격을 절감해 건보재정 안정화를 위한 일부 제도를 변경해야 한다. 현재 보험급여 품목 구매는 특정 가격 이하로만 구매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해당 품목의 구매가격을 보존해 준다. 의료기관이 특정 가격 이하로만 구매하려 할 뿐 더 이상 낮추려고 하지 않는 이유다. 낮춰 구매하면 낮게 보존해주기 때문이다.
구매원가를 많이 절감한 의료기관에 그만큼의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구매원가 절감 노력을 유도해야 한다.
의료기관 내부 리베이트 관행 근절 등 잘못된 구매 프로세스도 개선해야 한다. 병원 관계자는 “과거보다 리베이트 관행이 많아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 병원은 구매담당자와 공급업체 간 관계가 중요시되고 있다”고 전했다. GPO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GPO(Group Purchasing Organization): 병원 등 의료기관이 의약품·검진재료·의료장비 등을 개별적으로 구매하지 않고 외부 대행업체를 통해 다른 병원과 공동으로 일괄 구매하는 형태다. 기업이 소모성자재를 외부 대행업체를 통해 구매하는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s)와 비슷하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