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기술이 급속 발전하면서, 우리가 이용하는 방송·통신 융합서비스가 눈에 띄게 성장했다. 2000년대 초반 피처폰 시대에서 15년이 지난 지금, 모바일 기기로 실시간 방송, 동영상 공유 등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방송통신 융합서비스가 이용된다.
앞으로 이러한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설레고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우려스러운 이유는 하나다. 우리 방송·통신 규제 패러다임이 이러한 변화에 굼뜨기만 하다는 점이다. 지금 규제는 과거 케이블TV 독점 방송시장의 규제체계에서 한 발짝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2000년대 초반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방송·통신 규제지침을 만들어 플랫폼 사업자는 경쟁 활성화, 콘텐츠 사업자는 공공성, 다양성 확보란 원칙에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은 방송 산업의 경쟁과 공공성, 다양성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는 법·규제 정비를 완비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방송·통신 융합 환경은 어떠한가.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 활성화는 고사하고, 특정 사업자의 복수 플랫폼에 대한 합산규제와 같은 사업자 사전규제 도입과 같은 규제 강화가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산업 환경에서 지금의 법·규제로 기술 발전에 따른 연구·투자 확대를 통한 새로운 디지털 방송·통신 융합서비스 상품 개발이나 콘텐츠 확보를 통한 시청자 효용 증대에 힘쓸 수 있는 사업자는 몇이나 되는가. 이러한 법·규제 환경에서 융합시대 도래에 따른 이용자 편익 증대는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이미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선진국의 방송통신사업자는 이종 복수 방송플랫폼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합산 가입자 모집 제한 규제보다 방송플랫폼 간 융합을 통해 고품질의 셋톱박스 개발이나 고품질 콘텐츠 수급에 노력하고 있다. 방송이라는 산업에 경쟁과 콘텐츠의 공정성, 공공성이라는 두 가지 규제 철학이 명확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사업자는 이용자에게 적정한 요금으로 고품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제공하는 의무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공정경쟁을 명목으로 한 쪽이 어려울 수 있으니, 다른 한 쪽이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논리가 21세기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적합한 논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규제가 OECD 회원국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이미 우리나라 방송·통신 법·규제만 살펴봐도 유료방송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보유 사업자에 대한 사후적인 규제 방안은 완비가 돼 있다. 또, 과거와는 달리 유료방송시장은 사업자 간 경쟁이 탄탄히 구축돼 있다. 한 방송권역에 최소한 5개 이상 사업자가 경쟁하고, 한 플랫폼 사업자가 200여개의 실시간 채널을 제공하고 있는 사실로만 봐도 그렇다. 그래도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 정부가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통합방송법에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정책적으로 방송·통신 융합강국으로의 발전을 도모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창출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자랑인 탄탄하게 구축된 초고속 통신 네트워크와 글로벌 한류 열풍의 주역인 우리 콘텐츠가 융합해 세계 최고의 융합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디지털 패러다임을 반영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전규제와 같은 구시대 아날로그적 정책은 이제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이문행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moonhlee@su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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