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벤처의 `착한` 인수합병 생태계

해를 넘기기 며칠 전 인터넷 업체 A사 대표를 만났다. 그는 한 대기업과 몇 년간 ‘특허 침해 문제로 다투다 몸과 마음마저 큰 상처를 입었다. 지리한 싸움 끝에 최근에야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기업이 중소 벤처 기술을 빼앗아 시장을 결국 망쳐 놓았다”며 “그럴 욕심이었으면 차라리 우리 회사를 인수했더라면 시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최근 들어 스타트업에 대한 인수·합병이 부쩍 늘었다. 이들 인수나 합병, 투자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인수주체가 ICT 벤처라는 점이다.

지난달에만 다음카카오가 스타트업인 유저스토리랩에 투자했고 옐로모바일은 제이티넷을 인수했다. 엔씨소프트도 레진코믹스에 50억원을 투자하면서 시너지 찾기에 한창이다. 특히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은 지난 2012년 사재를 털어 케이큐브벤처스라는 벤처 캐피털을 설립해 블랙비어드, 컴패니멀스, 핀콘, 넵툰 등 총 36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과거 성공한 기업들이 시장 수성을 위해 작은 기업의 기술을 빼앗고 싸우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투자를 받은 쪽 역시 과거 ‘먹튀’ 논란을 일으켰던 것과는 다르다.

투자를 이끌어낸 스타트업 대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기업을 창업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글로벌 ICT기업이 인수와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운 생태계와 닮았다. 국내에서 새로운 인수 합병 문화가 등장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기업은 사람이나 생명체처럼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와 기술흐름에 맞게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다. 이를 저지시키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다.

이는 제조업이나 대기업에도 적용되는 명제다. 대기업이 권력과 자본을 앞세워 중소업체의 기술을 빼앗고 시장을 집어삼키는 과거의 시장 경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 흐름을 간파해 지속가능한 시대를 연다면 A사 대표같은 피해 사례는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