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청각장애, 단지 듣지 못하는 것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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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장

‘시각과 청각 중에 어느 하나만 허용된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장애인도서관의 서비스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다. 대부분은 예상대로 시각을 선택한다. 보지 못하는 것이 듣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편할 거란 생각이고, 나도 공감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요즘 갖게 됐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료도 제작해 서비스한다. 하지만 장애인도서관 하면 점자도서관을 떠올리듯 우리 장애인도서관의 서비스도 시각장애인을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다. 이것은 도서관이 주로 책이나 논문 등 읽기 자료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청각장애인들도 어린 아이가 한글을 깨치듯 글을 배우고 나면 어떤 글이라도 잘 읽을 수 있으므로 도서관의 자료를 활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참 순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각이나 청각 장애가 사회생활을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장애가 무엇인가를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라면 그것을 극복한 사람을 보면 그 어려움의 정도도 미뤄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은 등록자 기준으로 모두 26만명 내외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구체적 통계를 들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는 시각장애인이 청각장애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청각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상식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청각장애인에게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놀랍게도 글을 읽을 줄 아는 청각장애인에게조차 그것이 모두 외국어 자료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이것은 언어능력의 습득 및 발달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언어를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순서로 습득하는데, 청각장애인은 처음부터 듣기가 가능하지 않거나 불완전하므로 그 이후의 언어 습득과 발달에 장애가 생기고, 이것이 언어에 기초한 인지능력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잘 읽어도) 모국어만큼은 하기 어려운 것처럼 청각장애인에게는 우리가 우리말이라 부르는 모국어도 열심히 배워야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와 같게 된다. 그들에게 모국어는 우리말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수화(手話)라 부르는 수어(手語)다.

앞서 시각을 택한 사람들은 청각을 잃는다는 것을 단지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하는 정도의 불편이라고 생각하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각의 상실은 그에게서 모국어는 물론이고 언어능력의 상당 부분까지 빼앗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 했던 진실이다.

청각장애인이 잃은 것은 단지 소리만이 아니다. 그들의 상태를 알리고 설득하기 어려우니 적절한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우선 청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의 수요를 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나 음성자료 같은 대체자료가 필요하듯 청각장애인에게도 자료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체자료가 필요하다. 도서관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대체자료처럼 그들이 장애를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국회에서도 관련법의 제정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시각이냐 청각이냐, 이제 쉽게 선택할 수 없게 됐다.

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장 wonsunl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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