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경쟁을 중심으로 한 전력시장 개편 방안이 14년째 답보 상태인 이유는 국가 기간산업 변화에 따른 사회적 혼란 우려가 가장 크다. 지난 IMF 구제금융 직후 경제성장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제도 손질을 정부 차원에서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요금의 실질적 결정권을 정부가 갖고 있고 민생 물가의 기초 지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전면적인 판매경쟁 도입이 어렵다. 정부는 기간산업 민영화와 전기요금 인상 논란이 부담스럽고 산업계도 전기요금이 제한된 상황에서 시장 참여 매력이 그다지 높지 않다.
정부와 한전 역시 판매경쟁 도입에 대해서는 원론적 반대 입장은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판매경쟁 도입이 필요하지만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일단 2001년부터 시작된 전력시장 구조개편 논란은 지난 14년간 유지해 온 현 시장체제를 조금씩 보완하며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최근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에너지 신산업과 민간 참여 확대가 있다.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나 에너지 신산업과 민간 참여 확대라는 두 정책 기조에는 전력 판매경쟁 시대를 위한 준비 작업들이 조금씩 녹아들어 있다.
지난해 11월에 도입된 수요자원 거래시장은 이 같은 기조들이 반영된 변화였다. 수요자원 시장은 전력업계에 중소규모의 새로운 네가와트 사업자들이 들어선 기점을 마련했다. 사실 수요관리 사업자들은 감축한 전력을 파는 만큼 발전사업자에 가깝다. 실제로 발전사들과 경쟁하고 있고 전력도 한전에 판매한다. 하지만 이들은 감축 전력을 모으기 위해 판매 부문 소비자들을 만나고 이들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직접적인 판매경쟁은 아니지만 판매 부문에 비가격, 즉 서비스 상품이 도입된 셈이다.
수요자원 거래와 함께 도입이 결정된 정부 승인 차액계약 제도도 마찬가지다. 한전은 내년부터 발전사업자들과 협상을 통해 직접적인 차액계약 거래를 진행한다. 계약 가격에서의 차액보전 방법을 통해 현재 변동비 시장의 한계로 지적되는 가격 폭등과 사업자 수익률 하락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산업계에서는 이와 유사한 상호 법인간 거래방법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발전사가 직접 한전과 거래할 수도 있지만 대규모 사업장과 직접 계약거래를 하는 방식이다. 한전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고객에 전력을 파는 것으로 사실상 발전과 판매 겸업이다. 아직 발전과 판매 겸업이 허용되지 않고 있으나 단계적 판매 경쟁 도입으로 대용량 고객 시장이 열리면 직접 판매 혹은 한전 이외의 제2 판매사업자가 등장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에너지자립섬과 친환경에너지타운 등 분산 전원과 마이크로그리드 초기 모델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지역 에너지인프라 조성 사업이지만 과거와 달리 민간기업이 참여한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구축과 운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관련 사업모델이 발전할 경우 지역 단위의 전력설비 운영을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신산업 대다수가 세부 프로젝트에서 민간 참여 비중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며 “이런 변화가 당장 다가오진 않더라도 서서히 전력시장에 판매경쟁 도입 환경 조성을 위한 기초 작업이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