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 기술 표준 채택이 무산됐다. 국제 표준 동향을 고려하지 않고 지상파방송사가 제시한 기술 규격을 정식 민간표준으로 채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여론이 반영됐다. 이에 따라 기술 표준 채택을 지렛대 삼아 700㎒ 주파수를 방송용으로 할당받으려던 지상파 방송사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17일 표준총회를 열고 잠정표준 4건을 포함한 300여건의 표준 채택을 논의했다. 잠정표준 4건 중 웹 관련 표준 3건은 표준으로 채택됐지만 지상파 UHD 방송 기술 표준 채택은 부결됐다.
지상파방송사가 제시한 지상파 UHD 방송 기술 표준은 지난 7월 표준 채택이 한 차례 부결된 데 이어 10월 잠정표준으로 채택된 바 있다. 잠정표준은 1년 내 정식 표준으로 채택할 것인지를 재심의 받아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가 이번 총회에서 표준 심사를 다시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 진영은 성명서까지 내면서 지상파 UHD 방송 기술의 표준 채택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또다시 표준 채택이 무산되자 유감스럽다는 견해다.
방송사 한 관계자는 “UHD 방송을 상용화하려면 국가 표준이 필요하고 국가표준을 위해서는 단체표준(민간표준)이 있어야 하는데 표준이 마련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상용화가 될 수 없다”며 “통신사를 비롯한 몇몇 기업들이 방송 기술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사가 통신 표준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처럼 통신사 역시 방송 기술을 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40% 이상 의결권을 가진 통신사들이 주파수와 연계해 다른 산업의 발전을 막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표준을 주파수와 연계하는 것은 바로 지상파 방송사라는 게 정부와 통신사, ICT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표준 채택을 빌미로 정부에 700㎒ 주파수 할당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통신 분야 한 관계자는 “지상파 UHD 표준이 정해지면 방송사들은 정부와 통신 진영에 700㎒ 요구 강도를 높일 것”이라며 “글로벌 기술발전 동향을 고려하면 아직 국가 표준을 제정하기엔 시기상조인데도 표준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상파방송사가 제시한 UHD 방송 표준은 유럽식 표준(DVB-T2)이 기반이다. 제정된 지 5년이 지난 규격으로 압축률을 높인 고효율압축코딩(HEVC)을 추가했지만 방통융합(IP) 지원 등 여러 제약 요소가 존재한다.
유럽방송연합(EBU)조차 새로운 표준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미국 역시 차세대 표준(ATSC3.0)을 개발 중이다. 표준은 한번 제정하면 10년 이상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향후 유럽식 표준과 미국식 표준을 중심으로 진행될 국제 표준화 작업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번 표준 채택 무산으로 지상파 UHD 방송 표준은 계속 잠정표준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실험방송으로 기술적 완성도가 검증됐고 하루빨리 지상파 UHD 방송을 상용화해야 한다는 게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장이어서 잡음은 계속될 전망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아직 향후 계획은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