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40>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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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대형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경기침체로 우울한 한 해를 보냈는데, 연말 사람들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이번 사건으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낮엔 격분하고 밤엔 울분을 토하는 것은 각자 처지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오너가 아니면 신입사원이 됐든, 임원이 됐든 조직 내에서 어떤 형태로든 주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직장인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에게 주인의식 가지라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땅콩 회항을 재벌의 문제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재벌들의 부도덕적 행태를 연도별로 나열한 언론도 있고, 한국 경제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 언론도 있다. 심지어는 어떤 재벌의 딸은 나라를 지키려고 해군에 입대하는데 어떤 재벌의 딸은 아버지 회사에서 행패를 부린다고까지 했다. 논조를 보면 언론 스스로가 재벌 자식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자식 교육 잘못 시킨 때는 이렇게 된다고 적고 있다. 맞는 말이다. 아버지 스스로가 내가 딸 교육을 잘못시킨 거라고 대중을 향해 사죄했다. 이것 또한 맞는 말이다. 대한항공 조 회장을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조 회장 스스로도 직원들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나무라거나 제왕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유추해 본다. 나이 마흔인 딸이 무엇을 보고, 누구를 멘토로 리더십을 배웠을까 생각해 보자. 특히 우리나라 재벌들의 폐쇄적 속성을 생각하면 아마도 아버지인 회장님을 보고 회사경영과 리더십을 배웠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니 이번 사건이 피해자와 같은 회사 동료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잘 무마된다고 해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여든에 가까운 회장님이나 마흔 살 따님의 리더십이 바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아마도 대중의 관심이 식고 나면 지금 언론, 검찰, 관공서를 뛰어다니며 사건의 조기 진화를 위해 애쓴 비상대책위원회 임직원들을 불러서 노고를 치하하고 하와이에 가서 머리 좀 식히면 곧 잊혀질 것이다.

어차피 모든 사건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잊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의 리더십 스타일을 바꾸거나 직원들을 머슴으로 생각하는 오너의 생각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 받고 그렇게 커왔기 때문이다.

회장이나 사장들이 겉으로는 다들 점잖아 보이고 인격적인 것 같지만 같이 일해 보면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상사들도 많다. 이들 대부분이 자기 행태의 근원을 또 다른 전설적인 상사에서 찾는다. 자기가 좀 심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모셨던 상사는 자기보다 훨씬 더했다는 자기만의 위안을 가슴속에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이른바 상황적 리더십이다. 리더십이 강하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강한 리더십도 상황에 맞으면 탈이 없다. 또 리더십이 약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맞으면 오히려 리더십 약한 게 칭찬 받는다. 리더마다 다 교육환경이 다르고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리더십이 가장 좋다고 절대평가하기 어렵다. 각각의 리더십은 서로 다를 뿐이지 좋고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리더십이 발휘되었을 때 그 상황에 맞는지 안 맞는지의 기준만 있을 뿐이다.

이번 땅콩 회항 사건에서도 문제의 초점은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리더십이 발휘되었다는 데에 있다. ‘마카다미아를 퍼스트 클래스 승객에게 어떻게 서빙하는 것을 고객들이 더 좋아할까요’라고 물어 보든지, 사무장을 불러 ‘경험 많은 승무원들이 같이 한번 생각해 보고 최선의 방법을 추천해 주세요’라고 하든지, 좀 화가 났으면 ‘서울 가서 이 문제를 갖고 함께 회의를 했으면 해요’라고 끝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로한 회장이 딸을 대신해 사과하고, 눈 오는 날 긴 머리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포토라인에 서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더가 상황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평소에 훈련돼 있어야 한다. 사원 때부터 평상심을 갖고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최적의 리더십을 선택하는 것을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 자기의 멘토와 주위의 각종 사례를 통해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상황연구를 통해 스스로의 상황적 리더십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역량개발이 없이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이렇게 엉뚱한 리더십이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방법으로 튀어나오게 되고 결국 자기 스스로와 조직을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조 부사장 스스로가 상황적 리더십에 관한 스스로의 매뉴얼을 머릿속에 넣고 있었어야 했다. 자기는 공부하지 않으면서 직원들 보고 공부하지 않았다고 나무라면 누가 존경하고 따르겠는가.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곧 위태로워진다.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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