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의 물리학과, 화학과, 수학과 숫자가 급속히 줄고 있다. 대학들이 비인기학과라는 이유로 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 등을 통해 이들 학과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기초과학의 기본인 이들 학과의 축소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뿌리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14일 대학정보공시 사이트(대학알리미)에 따르면 공시대상인 161개 전국 대학 중 물리학과는 47개, 수학과는 58개, 화학과는 61개 대학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학과는 국·공립대와 일부 사립대에서만 운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초과학 학과를 운영하는 대학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역간 격차도 크다. 지역의 경우 국·공립대를 제외하면 기초과학 학과를 운영하는 대학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영어(영문)학과나 경영학과 등이 거의 모든 대학에 있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공학계열도 컴퓨터공학 등 인기학과는 설치된 대학이 100개를 훌쩍 넘어 기초과학 학과 소외현상과 대조를 보였다.
기존에 기초과학 학과를 운영하던 대학들 중 상당수는 학과 명칭을 변경하고 교육방향을 바꿨다. 물리학의 경우 응용물리학, 전자물리학, 나노물리학, 신소재물리학, 방사선물리학 등 실용학문과 결합했고 화학 역시 응용화학, 나노화학, 소재화학, 공업화학 등으로 바뀐 사례가 많다.
문제는 기초과학 학과의 축소 분위기는 현재도 진행형이라는데 있다. 대학들이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 폐과나 학과 통폐합을 실시할 때 기초과학 학과는 1순위로 거론된다.
실제로 동의대와 청주대는 대학알리미에 물리학과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미 폐과를 결정해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기존에 입학한 재학생들이 있어 아직 운영 중으로 표시될 뿐이다. 이런 사례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기초과학 학과를 운영하는 학교 수는 더 줄어든다.
대학들이 기초과학 학과를 폐과하거나 통합하는 것은 학생들의 지원이 적은 비인기 학과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우리사회 전반에 흐르는 과학 홀대 현상과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과학계는 기초과학의 뿌리 없이 응용과학이나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기초과학 학과가 각각 50개 내외에 불과하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며 “기초과학 축소는 우리나라 대학의 위기이자 대학의 정체성 상실”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니고, 기술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변질되는 것”이라며 “창조경제만 해도 더 이상 남을 따라가지 말고 우리가 세계를 선도하자는 것인데 기초과학을 경시해서는 추격형 사회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