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팬택 몰락, `득`보다 `실`이 많다

계속기업가치 1100억원. 청산가치 1500억원. 팬택 매각주관사 삼정KPMG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보고한 내용이다. 당장 영업을 이어가는 것보다 파산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팬택 청산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하지만 팬택은 단순 재무적 숫자를 뛰어넘는 가치를 가진 기업이다. 팬택이 무너질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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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수출 기여…노하우 가치도 높아

우선 경제적·기술적 측면이다. 팬택은 100%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1900여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550여개 협력업체의 임직원은 7만여명에 이른다. 팬택이 청산될 경우 당장 고용에 위협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수출액은 14조원이다.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며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에 톡톡히 기여해왔다. 팬택 관계자는 “국내시장에서는 꾸준한 시장점유율 유지로 해외 휴대폰 제조사의 한국시장 지배력 강화를 막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며 “해외 시장에서도 애플, 모토로라, 화웨이 등과 당당히 경쟁해 한국 IT 산업 국가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했다”고 말했다.

23년 간 팬택이 쌓은 기술력과 노하우도 버릴 수 없는 자산이다. 팬택은 그동안 연구개발(R&D)에만 3조원을 투자하며 지난해 기준 4985건의 특허를 보유했다. 현재 출원 중인 특허도 1만4573건에 이른다. 기술(R&D, 품질)뿐만 아니라 마케팅, 조달, 생산, AS, 관리 등 모든 측면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진 흔치 않은 기업이기도 하다. 국내에 100개 AS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미주·일본 전역에도 사후관리체계를 구축했다. 국내와 해외에서 제품을 만들어 팔고 고객을 관리한 경험이 있는 기업이 팬택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20년 넘게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쌓은 팬택의 자산을 다른 기업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며 “팬택이 무너지면 이 경험과 노하우, 기술력을 한 번에 잃게 된다”고 말했다.

최기창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는 “팬택 공백을 중국의 IT기업들이 점차 메꾸게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ICT 산업전체가 중국기업에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세계 시장에서 한국 IT기업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전한 생태계 위해 꼭 필요

팬택의 존재는 건전한 통신시장 생태계 조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팬택이 사라질 경우 국내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독과점으로 굳어진다. 애플이 존재하지만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외산의 무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다른 해외 브랜드는 발도 붙이기 힘들다. 팬택은 삼성·LG전자와 건전한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이동통신 사업자는 물론이고 소비자 효용에도 기여했다. 제조사가 많지 않을 경우 이통사는 협상력을 가질 수 없다. 통신사가 제조업체에 휘둘리면 제품 출고가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이 증가한다. 팬택이란 카드를 쥔 통신사가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이끌며 독과점 폐해를 막아왔다. 소비자들도 더 다양한 단말기를 더 다양한 가격대에 만날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국내 최초 외장카메라를 적용한 휴대폰 ‘IM-3100’과 국내 첫 번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리우스’ 등 팬택이 이끈 혁신이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팬택은 삼성·LG전자와 건전한 경쟁구도 형성을 통해 고객과 이통사를 포함한 생태계 참여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데 기여해왔다”며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고객 선택폭 확대와 정부 주요 정책인 가계 통신비 절감에 기여하기 위해서도 국내 제조 3사 경쟁구도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벤처 신화 몰락·창업 열풍에 찬물

지난 1991년 창업 후 23년 간 기업을 유지한 팬택은 국내 대표적인 벤처 기업으로 ‘벤처 신화’로 상징된다. 창업자 박병엽 전 부회장은 6명의 직원과 4000만원 자본금으로 지금의 팬택을 만들었다. 무선호출기로 시작해 휴대폰 제조로 발전하며 10년 만에 직원 2000여명, 연매출 1조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팬택 성공스토리는 많은 벤처 기업의 희망이다. 단순히 내수 기업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일본 등 선진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해 경쟁력을 인정받은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국내 벤처 생태계는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이후 암흑기를 맞았다. 스마트폰 혁명이 촉발한 제2의 창업 붐은 10년 만에 찾아온 단비다. 창업을 창조경제 선봉에 세우며 정부가 그토록 강조한 글로벌과 성공스토리를 만든 기업이 팬택이다. 현 시점에서 팬택 청산은 어렵게 태동한 벤처 창업 열풍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벤처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기업을 넘을 수 없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

최기창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는 “팬택이 성장하면서 무수한 대학에서 팬택의 성공을 교과서처럼 가르쳤다”며 “팬택이 무너지는 것은 벤처 생태계는 물론이고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또 다른 좌절을 안겨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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