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탐사 추진 계획을 둘러싼 국회와 정부 간 ‘쪽지예산’ 등의 논란으로 과학기술계가 좌불안석이다. 예산조정이라는 칼자루를 쥔 국회의 여야 간 힘겨루기에 과학기술계가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는 이번 논란에서 더 중요한 건 우리가 과연 달을 탐사할 수준이 되는지, 된다면 예산은 얼마가 들고, 시기는 언제가 적절한지 등 과학기술적, 정책적 타당성을 따져 보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전자신문은 달 탐사 계획 실현 가능성과 의미, 향후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방향 등을 산학연 전문가로부터 들어보는 긴급 좌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융합연구실장
△이병선 ETRI 위성시스템연구실장
△곽신웅 AP우주항공 우주항공사업본부장
※사회=박희범 전자신문 전국취재팀장
◇사회(박희범 전국취재팀장)=최근 유럽우주기구의 혜성탐사선 로제타가 사상 처음 혜성 표면에 탐사로봇을 착륙시켜 세계 과학자들을 흥분시켰다. 우리나라에선 달 탐사 추진사업이 과학기술계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우주개발 경쟁을 어떻게 보나.
◇최기혁 항우연 미래융합연구실장=세계 우주개발 경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순수한 과학적인 의미가 있다. 로제타 위성이 50억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행성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생명체가 어떻게 나왔는지 단서가 나올 수 있다.
둘째는 기술 발전을 위한 모멘텀이 있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장기적으로, 주기적으로 우주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브랜드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사회=우주개발이 산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곽신웅 AP우주항공 우주항공사업본부장=로제타에 의한 산업유발 효과는 단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은 보편적으로 쓰는 전자레인지 등도 처음엔 최첨단 우주기술이었다.
예측컨대, 당장은 심우주 통신이나 정밀제어시스템 분야가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최기혁=로제타 프로젝트에는 14억유로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한다. 선진국은 국가우주기관이 직접 위성을 개발하기보다는 산업체가 담당한다고 볼 때 그 정도 예산이 풀리면 산업체 육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회=논란이 된 달 탐사 얘기를 해보자. 달 탐사 시기는 적정한가. 차기 대선용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또 왜 협력대상이 미국이냐는 반론도 있는데.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우리가 달 탐사를 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기술발전이다. 우주기술을 발전시킬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우주개발을 꾸준히 해왔다. 달 탐사는 그 과정일 뿐이다.
또 단독으로 한다면 심우주 항행이나 우주추진 등은 우리가 해보지 않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 어려운 것은 심우주 통신 기술이다. 로제타는 약 5억㎞ 정도의 거리에서 통신을 한다. 그런 심우주 통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DSN(Deep Space Network)이라는 시설이 필요한데, 그 시설은 유일하게 미국만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같이 달 탐사를 진행하게 되면 DSN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간접적으로 DSN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2018년 달착륙선을 달 극지방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이 극지방이 달의 끝부분이어서 DSN으로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달 탐사 계획인 2017년 달 궤도선 발사가 성공하면 우리 궤도선이 NASA 달 탐사 계획에서 통신 중계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NASA의 달 탐사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2017년에 발사하는 것이 충분한 타당성을 얻을 수 있다.
2020년까지는 충분히 2017년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힘으로 착륙선, 궤도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당연히 계획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대선이 2017년인 것은 고정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벤트 때문에 2017년에 달 탐사 시기를 맞추었다는 것은 오해다. 정치적으로 보지 말고 그냥 기술적, 정책적 측면에서 봐줬으면 한다.
◇사회=달 탐사에 소요되는 예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달에 쓰는 예산이 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곽신웅=국가의 사업으로, 2000억원을 투자해서 우리나라 전체 산업, 기술 레벨이 올라간다는 것이 달 탐사가 갖는 첫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가 달에도 탐사선을 보낼 기술이 있다고 하면 잠재적으로 탄도탄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잠재적 방어능력을 주변국에 알릴 수 있다.
◇사회=우리가 DSN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NASA 측에 제시했고, NASA 측에서 다른 부분도 협력해보자고 역제안을 한 것이라고 들었다. 미국도 달 탐사를 자력으로 하는 경제적 부담이 있는 건가. 기술적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창진=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오바마의 정책이 ‘달로부터 벗어나자’다. 이미 갔던 달에 또 가는 것은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우주개발에 들어가는 예산이 점점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당연히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우주개발 특성 중 하나가 다국적 공동개발이다. 우주 정거장, 로제타를 보면 그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깊숙이 들어가 보면 다국적 연구가 같이 진행되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달 탐사 협력을 제안한 것은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현실적 이유도 있다. 화성에 치우친 연구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달에 대해 아직 풀리지 않은 과학적, 기술적 시험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달 탐사 계획이 없었을 때는 이에 대해 논의조차 없었지만, 구체적으로 대통령 국정과제로 정해지고, 계획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논의를 하다 보니 달 탐사에 공동 참여하자는 내용이 오간 것이다. 우리가 달 탐사에 참여하면 NASA도 도와주겠다는 상황이다. 그렇게 최종 계획이 잡힌 상태다.
◇최기혁=기술자들끼리 얘기해보면 달 탐사 준비는 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2010년부터 준비해왔다. 달 궤도선은 아리랑 위성과 기술 유사성이 70% 정도 된다. NASA의 협력을 받으면 정해진 타임 테이블대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달 탐사 기술 확보에 필요한 예산이 확보된다면 충분히 진행 가능할 것이다.
우주개발 프로그램이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다보니 정권이 바뀌는 시기에 겹쳐, 쓸데없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사회=국내외 협력은 어떠한가.
◇이병선 ETRI 위성시스템연구실장=NASA와의 위성분야 국제협력이나 항우연과 기술협력이 잘 되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MOU를 교환한 뒤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달까지 가는 기술을 확보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항우연과 일을 하다 보니 같은 통신이지만 이쪽 통신시장은 상업성보다는 좀 더 발전된 부분이다. 지상은 사물인터넷이 대세가 되겠지만, 결국은 모든 장비들이 서로 통신 ILN(International Lunar Network)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달에 가는 것이 그런 것에 대한 확장이라고 보면 우리의 통신 기술을 달에서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상업적으로 볼 때는 상업적 통신시장, 지상 장비 만드는 회사들의 기술들이 집약이 돼서 달에 간다고 보면, 달 탐사로 얻을 수 있는 상업적 효과, 선점효과도 대단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제는 달에 갈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창진=왜 우주인과 달 탐사를 비교하는지 모르겠다. 우주인은 무형 자산이 남는 것이고 달 탐사는 유형의 자산이 남는 것이다. 우주인터넷이라는 것을 달 탐사 1단계에 시험할 예정이다. 행성이나 혹성에 거주시설을 짓거나 새로운 것을 만든다면 3D프린터로 해야 할 것이다.
IT융합이 궁극적으로 우주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IT의 우주확장에 우리가 선도역할을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소형 위성의 컨트롤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NASA에서도 흥미를 갖고 검토 중이다. 앞으로 더 구체화하고 시험을 통해 기술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선 이벤트라면 2017년 초에 맞춰서, 그렇게 치밀한 계획을 하면 대선 이벤트에 더 도움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불편한 오해는 과학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쟁에 휘말려 오해를 사면 달탐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가 떨어지는 등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과학적 문제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은 자제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사회=시기적으로 우주개발 전체를 봤을 때, 로드맵상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단계에서 달 탐사가 적절하게 개발될 시점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창진=지금이 끓는 점(Boiling Point)이라고 생각한다. 물을 끓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이 되면 수증기로 바뀐다. 지금이 그 시기라고 본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기 시작할 단계인 것이다.
달 탐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야 할 보일링 포인트다. 이 시점을 지나야만 우리가 더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게 된다. 스마트폰 같은 첨단 기술이 우주개발과 맞물려 예를 들어 ‘우주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개발된다면 이것이 가져올 파장이 얼마나 클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간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달 착륙을 하기 위해 탐사로봇을 만드는데 탐사로봇 20㎏짜리가 40㎞를 움직인다. 어떤 나라의 로봇도 40㎞를 돌아다닌 전례가 없다. 그것을 우리가 하겠다고 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로봇 제작 기술이 세계 1위로 올라가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들을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정량화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최기혁=영국인들은 2차 대전 때 과학기술이 영국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레이더 개발을 통해 공군력이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을 상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 돌아가신 영국 과학자들을 보면 레이더 개발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국가가 온 힘을 다해서 과학에 집중했고, 그것이 나라를 살린 것이다.
달탐사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모멘텀이 되어, 총체적으로 우리나라 과학을 이끌어갈 수 있는 상징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달이라는 것은 참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시시한 것보다는 모험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이병선=국제협력에서 ESA는 유럽 여러 나라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사안을 결정하려면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도 잘 안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잘 발전한 것은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ESA에 비해 NASA는 미국 한 국가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협력이 쉽다.
◇사회=우리나라의 기술적 역량이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은데 또 융합연구 관점에서 본다면.
◇최기혁=과학적인 것은 외부 출연연·대학교와의 협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융합연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출연연들이 25개 정도인데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출연연들은 필요한 연구를 이미 많이 해오고 있었다. 기계연은 분광기 기술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용도는 조금 다르지만, 연구를 더 진행하면 로버에 실리는 레이저 분광기를 만들어 달 탐사에 활용할 수 있다.
◇이창진=달 탐사를 위한 융합연구는 출연연의 거버넌스를 변화시킬 수 있는 첫 번째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달 탐사를 위해 각 연구원의 새로운 기술들, 이런 시험해볼 수 있는 것들을 엮어 달 탐사에 적용하면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방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출연연 거버넌스 자체에 큰 변화를 줄 수는 없겠지만 국가 전체 과학기술이 집약돼 진행하는 명실상부한 융합연구가 될 것이다.
◇곽신웅=70% 확보한 기술에서 출발하지만 우주핵심 부품들을 국산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정부에서 매년 200억원 정도 투자하는 게 탑재 컴퓨터 S-BAND 송수신기, 지향성 안테나 등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 그동안 국산화된 기술을 검증하고, 심우주에서까지 검증하면 주로 위성 분야에서 해외로 수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기술수준은 된다고 보나, 달탐사로 얻는 건 무엇인가.
◇곽신웅=인공위성 궤도만 경험해보고 그 바깥 부분은 경험이 없는 것뿐, 하드웨어 부분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얻는 건 희귀 자원 개발의 우선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병선=기술적인 부분으로 보면 우주통신이나 원자력 전지 등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우주통신기술도 해야 한다.
△최기혁=달 탐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행성과학계도 상당히 붐이 일지 않을까 싶다. 달 탐사가 진행되면서 그런 내용을 공부하려는 젊은 과학도도 생기고 관련 학회도 생겨나고, 행성을 연구하겠다는 붐도 일 수 있을 것이다. 학과도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이창진=좀 믿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도 다들 반대했다. 반도체 한다고 하니까 그때도 반대했다. 현대가 자동차 만든다고 했을 때도 안 된다고 했다. 과학자들이 사기꾼이 아닌 이상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몇 번의 실패도 있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정치적으로 연결시키지 말고 잘 보살펴주었으면 좋겠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