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은 보통 뇌에서 내린 명령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피곤할 때 단 것을 먹고 싶어 하거나 싫은 일이 벌어지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힘내자는 생각 같은 걸 할 때에는 머릿속에 있는 뇌가 아닌 제2의 뇌라고 불리는 장에 위치한 신경계 시스템(Enteric Nervous System)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창자가 생각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
장 신경계 시스템은 제2의 뇌라고 불린다. 식도에서 항문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길이는 9m 가량이며 쥐의 뇌보다 5배나 많은 5억 개에 달하는 뉴런으로 이뤄져 있다.
스트레스를 느낄 때 초콜릿이나 기름진 음식을 요구하는 건 이 장 신경계 시스템이 작용한 결과다. 장벽에 있는 내장 신경계는 소화를 조절하는 조직을 포함하고 있지만 장 신경계는 환경 변화에 따라 뇌와 별개로 개별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신경계는 광대한 뉴런이 분산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자율 신경의 일부다. 하지만 대장 조직에 덮여 있는 탓에 19세기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복잡한 소화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이 전용 신경망은 위에 들어온 음식물을 근육 수축으로 장까지 나르고 장내에 pH값을 화학 성분에 따라 유지하는 효과를 제공한다.
또 5억 개에 달하는 뉴런은 식사와 함께 운반될 우려가 있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막는 역할도 한다. 병원체가 장을 통과하는 걸 감지해 장벽에 있는 면역세포가 히스타민을 포함한 염증 물질을 분비시키게 한다. 병원균을 배출하기 위해 설사나 구토를 선택하는 것도 뇌가 아니라 장 신경계 시스템이 결정하는 것이다.
장 신경계는 뇌와 같은 양의 도파민을 생성하는 다양한 신경과 신경교세포 등으로 이뤄져 있다. 뇌와 비슷한 수준인 40종에 달하는 신경 전달 물질을 합성하고 체내에 있는 세로토닌 중 95%는 항상 장 신경계에 충전되어 있다.
앞서 설명했듯 뇌와 같은 양의 도파민을 합성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도파민은 기쁨이나 의욕과 관련한 신경 전달 물질이지만 장내에서 근육 수축을 조절하는 신경 사이에서 신호를 주는 분자로 활동한다. 세로토닌은 우울증과 수면, 체온 조절이나 행복한 기분과 관련한 물질. 장내에서 합성된 세로토닌은 간이나 폐가 손상을 받으면 혈액에 들어가서 수리를 맡고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장 신경계가 사람의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번지점프를 할지 결정을 내릴 때 공포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건 뇌에 한정된다. 하지만 한 실험 결과 갓 태어난 쥐의 위장에 자극이 약한 화학물질을 투여하자 육체적 위험이 임박하면 다른 쥐보다 우울증이나 불안 징후가 커졌다. 장 자체가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인 창자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장 신경계 시스템은 소화 외에도 인체에 다양한 영향을 준다. 하지만 제2의 뇌는 다양한 뇌 질환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파킨슨병은 뇌의 도파민을 생산하는 세포 손상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파킨슨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루이소체라는 단백질군이 장내의 도파민을 생산하는 뉴런에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파킨슨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루이소체 현황을 조사한 결과 원인은 대장이며 바이러스 등과 함께 신경을 통해 뇌에 침투한 것으로 판단됐다고 한다.
또 자폐증 환자는 위장 장애 경향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뇌와 내장 모두의 신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보인다. 뇌 질환이 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장 신경계의 세포가 뇌 질환 치료에 쓸 수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테크홀릭팀
이상우기자 techhol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