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영어학습과 국가연구개발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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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유치원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영어 학습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통계청이 집계한 2012년 우리나라 사교육시장 규모를 보면 영어 분야의 규모는 6조5000억원에 이른다. 19조원인 사교육 시장의 34%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에 비해 영어 구사력은 초라한 수준이다. 몇 해 전 우리의 영어 읽기 순위가 세계 35위, 영어 말하기는 121위로 뒤처져 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 국민의 평균 영어실력이 소말리아 해적보다도 못하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토익 문제집을 통째로 외워 900점 이상을 받지만, 정작 외국인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영어학습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토익 점수가 아무리 높더라도, 실제로 읽고 쓰고 말하는 질적 수준이 향상돼야 영어학습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어 학습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의 현주소를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된다. 우리나라 국가 R&D 투자 규모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2년 기준 GDP 대비 4.36%로 세계 1위, 연구개발비 규모로 세계 5위권이다. 내년 R&D 분야 예산안은 올해 1조453억원(5.9%) 증액된 18조8245억원으로 책정됐다. 정부 총지출(376조원)의 5.0%에 해당되는 액수다. 국가 R&D의 양적 지표는 최고 수준이지만 연구성과의 생산성이나 사업화 능력 그리고 과학기술 경쟁력 부문은 여전히 주요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아시아중소기업학회(ACSB)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R&D 투자 규모는 세계 1위지만 R&D 생산성은 세계 16위로 효율성 부문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표 달성이 용이한 안전한 연구를 선호하고, 전문인력들이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연구행정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한번 연구 목표가 정해지면 수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경직된 연구개발 시스템과 정량적인 지표 중심의 평가 방법도 문제라는 분석이다.

R&D 선진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질적 대비 효과는 더 뚜렷해진다.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개발 조직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최고의 민간 전문가를 프로젝트 매니저로 기용하고 전권을 부여해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지원한다. 개발이 완료된 기술은 과감하게 민간기업에 개방한다. 우리의 경제, 사회,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를 뒤흔든 인터넷과 GPS를 개발했고, 최근에는 무인자동차, 로봇, 드론 챌린지 등의 개최로 혁신적 기술의 상용화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연구개발사업은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업들이다. 문제가 있는 부분만 도려내는 단순한 처방도 안 되고 우리와 환경이 다른 선진국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것도 금물이다.

이제는 우리의 현실에 맞는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당연히 이러한 논의는 연구개발 주체인 연구자, 기업인, 대학교수 그리고 연구개발사업의 자금을 지원하고 수혜를 받는 국민 등 모든 관계자들이 모여 충분한 논의와 문제점을 분석한 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확한 문제점과 해결책은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3일 ‘R&D, 그 문제점과 돌파구’란 주제로 대토론회가 열린다.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련 주체가 모두 모여 우리나라 R&D의 문제점과 그 근본원인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격의 없는 토론의 장이다. 이 자리가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기술 혁신시스템의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 서로 터놓고 논의해 혁신적 개선방안과 해법이 도출해내는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투입 대비 효과가 적은 것은 영어학습으로 족하지 않을까?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ypark@kis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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