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 김경자씨(53세). 광주광역시에 사는 김 씨는 집 근처 병원에서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의 진료를 받아보라는 권유로 서울의 상급 종합병원인 A병원에 전화로 예약을 했다. A병원은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한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받아 접수했다. 이틀 후 예약일에 맞춰 A병원을 찾은 김 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분명 예약할 때 허리가 아프다고 얘기했는데 병원에 와보니 내과에 접수가 돼 있었던 것이다. 지역 의료보험 납입자임에도 불구, 건강보험 비적용 대상자로도 구분돼 있었다.
병원이 전화나 인터넷 예약 시 환자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았을 때 발생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지난 8월 강화된 개정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으로 의료기관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을 때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할 수 없게 됐다. 의료기관의 법 적용은 내년 2월까지 유예됐다.
◇전화·인터넷 예약, 진료행위 여부 판단
논란의 핵심은 전화·인터넷 예약이 진료행위나 아니냐다. 과거 전화·인터넷으로 접수된 환자 예약이 수작업으로 처리될 때는 진료 직전 병원 현장에서 다시 한 번 접수 확인을 하기 때문에 진료행위로 여기지 않았다. 문제는 현재 병원들이 앞 다퉈 의료정보시스템을 구축, 예약과 진료 프로세스 구분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화·인터넷 예약 접수 즉시 시스템을 통해 상담과 진료과와 주치의가 확정된다. 병원은 해당 환자에게 병원등록번호를 부여하고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 여부를 확인한다. 이후 진료와 처방 등 프로세스로 이어진다. 예약 접수 시 사용된 주민등록번호가 최종 처방까지 이어지게 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의료계는 전화·인터넷 예약은 진료행위이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병원 현장에서의 접수는 진료행위로 인정,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허용한다.
보건복지부는 전화·인터넷 예약을 진료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유권해석 검토에 착수했다. 개인정보보호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는 복지부 유권해석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동명이인으로 인한 의료사고 발생 우려
전화·인터넷 예약 시 주민등록번호 수십 불허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사고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약 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으면 동명이인 예약, 타인 예약, 이중 번호발생 등 문제가 발생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의료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국내 한 대형병원에서는 ‘김영자’라는 이름을 가진 환자가 연간 총 2570건이 접수된다. 이름과 생년월일까지 같은 경우도 전체적으로 수천건이 발생된다. 예를 들어 ‘이춘자’라는 이름으로 생년월일이 같은 접수 건수가 연간 87건에 이른다.
휴대폰 번호나 주소 등은 자주 변경돼 지속 가능한 개인 식별번호로 활용하기 어렵다. 선홍규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외래업무 파트장은 “동명이인으로 문제가 발생돼 수정한 사례가 있다”며 “주민등록번호 수집 불허는 의료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대상 조회에 주민번호 필요
예약 시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불허하는 것은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에도 반대된다.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재정 악화 원인 해소를 위해 예약 시 반드시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사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건강보험 조회를 위해 환자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7월 의료기관에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이라는 공문을 발송, 건강보험 무적격자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렸다.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로 자격조회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갖췄다. 이 시스템은 환자의 주민등록번호가 공단에 등록된 보험적용 대상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일치할 경우에만 확인이 가능하다.
김선욱 법무법인세승 대표변호사는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사전에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 여부를 파악하도록 권유한 상황에서 핵심 수단인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 서비스에도 차질이 생긴다. 예약 접수 시 발송되는 단문메시지(SMS)가 부정확할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면 환자 이름 등을 명확히 알 수 있지만 접수자의 음성에만 의존하면 불명확한 발음으로 혼선이 발생될 수 있다.
조주희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 외래원무팀장은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못하면 환자 이름에 오류가 발생되거나 진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환자가 병원을 진료시간 전에 방문해 현장 접수를 다시 해야 한다”며 “환자 서비스가 다시 퇴보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