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소프트웨어(SW) 사용이 장려되는 공공기관 제안요청서(RFP)에 특정 외산 솔루션을 명시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국산 SW업계는 특정 솔루션을 언급한 사업 발주는 ‘독소조항’이라고 반발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산교통공사 승차권 발매자동화설비시스템(AFC) 구매 사양서에 ‘데이터베이스(DB)는 오라클을 사용하며 대부분 기능 구현이 가능한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을 사용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주전산기 구축 사업에 특정 제품이나 규격을 명시한 것은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에게는 독소조항”이라며 “공정한 경쟁이나 제품 성능 확인없이 외산 제품을 선호한다”고 비판했다. 한 DB업체는 타 제품도 공정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사 측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기획재정부 계약예규에 따르면, 물품 제조·구매 입찰시 부당하게 특정 상표나 특정 규격, 모델을 지정해서는 안된다. 안전행정부 예규에서도 입찰 공고나 설계서·규격서에서 특정 규격·모델·상표 등을 지정해 입찰에 부치거나 계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노후화된 일부 하드웨어(HW)를 교체하는 수준이라 기존 SW간 호환성 등을 고려해 특정 제품을 명시했다”며 “전체 시스템 구축이나 설비 교환 시에는 제품 규격 등을 명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교통공사 외에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국립대학, 정부 산하기관에서도 특정 외산 제품을 규격으로 명시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에는 이 같은 사례가 수십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국산 SW 장려한다고 외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유명 외산 제품만 명시해 국산 제품은 경쟁이나 테스트조차 시켜주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며 “IT 담당자의 인식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시스템 운영 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적으로 IT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문화도 한 몫한다. 국산 SW를 사용하고 싶지만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 문제 등 오류가 발생하면 IT 구매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외산 브랜드 제품을 구매해 책임 회피 수단으로 삼는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국산 SW 품질과 성능이 좋아졌지만 이를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성능 테스트 등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해당 기관에 적합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