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중국 통신기술 규모의 경제 ‘공포’

지난해 10월 LG유플러스가 화웨이 기지국 도입을 결정한 것은 국내 통신 시장에 일대 충격이었다. 이미 국내 유선 시장에서 사업을 펼쳐오던 화웨이는 중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무선 장비 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 통신 생태계의 전반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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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품질이 최우선인 국내 통신사가 화웨이를 선택했다는 것은 화웨이가 더 이상 가격만으로 승부하는 기업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했다. 화웨이뿐만이 아니다. ZTE를 비롯해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 중인 중국 통신 업체들이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 LTE 장비시장 점유율 40%

화웨이는 에릭슨에 이은 세계 2위 통신장비 업체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지난해 매출은 약 42조원으로 이미 에릭슨을 넘어섰다. 통신사와 기업 유무선망 구축, 스마트폰 제작, 통신 솔루션 개발을 비롯한 통신 전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70%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할 정도로 해외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화웨이의 경쟁사인 ZTE는 중국을 발판 삼아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4G LTE를 비롯해 100G 광대역 네트워크, 라우터 등 통신 장비와 스마트폰까지 풀 라인업을 갖추고 통신 분야에서 고른 활약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약 13조원이다.

화웨이와 ZTE는 이 같은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시스코, 알카텔, 노키아, 에릭슨 등 전통의 강자들과 경쟁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서플라이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LTE 시장 점유율은 화웨이가 22.2%, ZTE가 17.9%로 1위 에릭슨(22.4%)를 바짝 뒤쫓고 있다. 두 기업의 점유율 합은 40%를 넘어섰다. 하드웨어 경쟁력은 이미 선두권에 올라섰고 가격뿐만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경쟁사를 위협하고 있다는 평가다.

화웨이는 3GPP, APT 등 글로벌 표준화 단체에서 활동하며 세계 통신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3년 12월 기준 특허협력조약(PCT)에 출원한 특허 건수는 1만4555건에 달한다. 2018년까지 5G 통신 연구에 6억달러(약 63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김학수 한국화웨이 부사장은 “화웨이는 통신 장비 업체 중 5G 관련 특허가 가장 많고 2나노 수준의 칩을 단말에 적용해 단가 경쟁력이 높다”며 “올해 전체 R&D 비용은 6조5000억원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에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와

국내 무선통신 장비 시장은 삼성전자가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노키아, 에릭슨, 화웨이가 경쟁을 펼치는 형국이다. 하지만 장비 업체 관계자들은 화웨이와 ZTE의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통신장비 업체 대표는 “과거 중국 업체의 장비 가격은 경쟁사 장비의 50~60% 수준이었는데 이제 70%까지 올라왔다”며 “이는 그만큼 품질이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하며 가격경쟁력까지 더해 국내 장비 업체들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안 이슈만 없다면 유무선을 통틀어 중국 업체를 당할 기업이 없다고 덧붙였다.

화웨이는 LG유플러스에 무선통신 장비를 공급했지만 이미 3대 통신사 유선 장비를 비롯해 한국전력, 강원소방 등 공공 기관에도 장비를 구축했다. 대기업과 금융권 등 군을 제외한 많은 분야에 구축 사례를 갖고 있다. ZTE가 의욕을 보이고 있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사업에도 중국 업체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돼 국내 통신사와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은 이제 기존 글로벌 기업보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 업체를 더 큰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상당수 분야에서 국내 업체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고 기술력은 이미 국내 업체를 뛰어넘었다는 설명이다.

한 전송장비(MSPP) 업체 임원은 “그동안 국내 업체는 노키아나 에릭슨 등 글로벌 업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며 “하지만 근래 들어 발주되는 입찰 상당수에서 중국 업체가 두각을 나타내며 시장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분야에선 이미 시장 주도

국내 통신장비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이 어느 정도인지 통계자료는 아직 없다. 하지만 머지않아 국내 통신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중국 업체의 국내 시장 공략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중국 업체는 이미 일부 분야에선 이미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전춘미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는 LTE-TDD를 사용하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수요가 높고 정부 주도로 많은 투자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며 “이 분야에서 만큼은 이미 중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태라면 향후 국내에 LTE-TDD가 보급되더라도 중국 업체의 시장 주도를 막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 기업은 초기 가격을 무기로 경쟁을 시작해 다른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았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시장 영향력을 높이려면 기술과 품질뿐만 아니라 서비스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 업체의 향후 타깃은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규태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 부회장은 “국내 업체들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공공 분야라도 중국 업체라고 해서 무조건 차별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중국 업체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업체 간 공동 연구개발(R&D)과 마케팅 등으로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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