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처럼 몸의 상처가 스스로 치유되고, 컴퓨터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각각 영화 ‘엑스맨’과 ‘그녀(Her)’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이제 더 이상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신무기를 개발해 온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최근 병사의 신경계에 특수 장치를 삽입해 빠른 자가 치유가 가능하게 하는 ‘일렉트Rx(ElectRx)’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에 음성인식 프로그램인 ‘시리(Siri)’를 탑재했는데, 시리는 애플이 2010년 인수한 벤처기업이 보유한 기술로 ‘DARPA’와 진행했던 인공지능 연구에서 출발했다.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 기술들은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왔다.
이런 기술들은 뛰어난 천재의 손끝에서 탄생하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투자하고 연구해서 얻어낸 결과물들이다.
미 국방부에 소속된 ‘DARPA’는 1958년 설립된 이래 미래 무기에 있어 파급력이 큰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기존 무기나 군사 관련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연구했다. 인공지능(AI) 무기와 통신 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DARPA’의 성공요인은 실패할 우려가 커서 대학이나 기업이 하기 힘든 ‘고위험-고성과(High risk-High return) 연구’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개방형 조직을 통한 적극적인 외부인재 활용 등으로 꼽는다.
무엇보다 PM(프로젝트 매니저)에게 전권을 줘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수행하도록 하는 유연한 운영방식이 ‘DARPA’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가 가능케 하는 이유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의 답도 ‘DARPA’ 속에서 찾을 수 있다. ‘DARPA’가 이뤄낸 성과들은 국방연구개발로만 끝나지 않고 공공 및 민간부문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시스템화돼 있다.
민간시스템과 연결돼 기업들이 ‘DARPA’의 기술을 응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또 다른 부가가치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컴퓨터, 인터넷, 내비게이션, 전자레인지 등이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항상 추격형 연구만을 수행하던 우리나라도 ‘한국형 DARPA’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국방R&D의 심장인 국방과학연구소가 올해 초 연구소 내에 창의적·도전적 R&D 기반을 구축하고 미래를 선도하기 위한 국방고등기술원(I-DATe)을 신설했다.
국방고등기술원은 민간의 신개념·신기술 아이디어와 외부 인재를 국방R&D에 활용하는 개방형 조직이다.
최근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국방고등기술연구를 기획하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프로그램 매니저(PM)를 채용해, 약 5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별개로 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개별 연구개발 과제도 함께 공모한다.
‘한국형 DARPA’로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연구개발은 오랜 시간과 예산을 필요로 한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무수한 실패는 덤이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길을 갈 때 새로운 길을 찾는 법이다.
한국형 DARPA는 언젠가는 제2의 컴퓨터, 인터넷 등 첨단 기술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들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며, 조금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는 자세도 함께 가졌으면 한다.
장용석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글로벌정책본부 연구위원 jang@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