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곡`, 老 경제학자가 미래에 전하는 선물

서울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통근 전용역’이라는 별명이 있다. 역세권이라고는 하지만 황량한 벌판에 몇 년 전 지어놓고도 지난 5월에야 열차가 서기 시작했다. 인근 5호선 마곡역도 12년간 ‘무정차 유령역’으로 방치되다 2008년 첫 손님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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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황량한 마곡’이 당시 조순 서울시장(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미래 세대를 위한 결단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노(老) 경제학자’ 조 시장은 취임 이듬해인 1996년, 전임 시장이 만든 대규모 택지지구 중심의 ‘5대 거점 개발 계획’에서 마곡을 제외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개발가능지로 남겨둬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그로부터 18년 뒤, 조 시장의 이런 ‘결단’이 빛을 내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마곡은 선진국도 안 부러운 첨단 연구개발(R&D) 인프라 기반의 자족도시로 성장하게 됐다. 그 첫발이 오는 23일 기공식을 여는 ‘LG사이언스파크’다.

LG사이언스파크는 전자를 비롯한 각 계열사 연구개발(R&D) 인력을 한데 모으는 통합 연구단지다. 인천·김포 국제공항과 서울 주요거점을 30분에 주파할 수 있는 마곡에서 그룹과 국가의 미래를 심겠다는 구상이다. 대규모 택지지구가 됐을 마곡이 조 시장 덕분에 세계적 규모의 ‘대한민국 차세대 성장엔진’ 지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런 마곡의 LG사이언스파크 기공식에 조순 전 시장을 초대하는 건 어떨까. 미래 세대를 위한다던 그의 결단이 오늘의 마곡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마곡에서 LG는 미래원천기술을 개발, 다양한 창조적 융합 상품·서비스·기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전자·화학·통신서비스 계열사들의 공동 R&D로 새로운 융·복합 시대도 열겠다는 구상이다.

오는 2020년, 마곡나루역과 마곡역은 더욱 붐빌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통근 전용역이 미래의 성장동력을 키울 기업인과 연구원들로 가득 찰 것이다. 18년 전, 조 시장이 바랐던 마곡은 이런 미래 세대를 위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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