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칼럼]한국 비메모리 반도체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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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부하이텍 매각 입찰일이다. 중국과 대만 반도체 업체, 국내외 투자펀드가 참여한다. 이르면 이주 우선협상대상자가 나온다. 주인 교체가 임박했다.

문득 2000년 한여름 충북 음성 감곡면 공사 현장이 떠오른다. 한적한 농촌에 반도체 공장 건물이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그간 반신반의했던 동부 임직원과 현지 주민 반응이 기대로 바뀌었다. ‘훗날 음성이 고추가 아닌 반도체로 유명해지리라’ 하는 기원이다. 불행하게도 음성은 여전히 고추의 고장이다.

당시 반도체 사업 경험이 아주 없는 동부가 조 단위 설비투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 노선을 바꾼 비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잘 해낼지 우려가 팽배했다. 실제로 동부는 이후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모자란 자금을 마련하느라 동부한농에 더부살이도 살았다. 온갖 노력 끝에 지긋지긋한 2000년대를 넘겼다. 막 순항하려던 차에 느닷없이 그룹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김준기 동부 회장은 그리 공들인 동부하이텍을 결국 눈물을 머금고 매물로 내놨다.

메모리에 편중됐다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다. 그런데 씨앗은 비메모리 반도체다. 특히 아날로그 반도체다. 아남산업(아남반도체)과 한국전자(KEC)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부천 비메모리 공장도 있었다.

그런데 메모리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때 아날로그반도체 산업은 그러하지 못했다. 부족한 자금력과 비전 부재 탓이 컸다. 자금력이야 그렇다 해도 비전 부재는 너무 아쉽다. 아남, KEC보다 한참 뒤에 등장했지만 미래 성공을 확신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해 세계 최고 파운드리 업체가 된 대만 TSMC를 보면 더욱 그렇다.

비전 부재는 재벌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삼성은 1998년 부천 공장을 미국 페어차일드에 넘겼다. 메모리 중심 사업 구조조정이었지만 비메모리 생산라인과 인력을 잃은 삼성전자는 복구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했다. 페어차일드는 인수 이후 전력반도체 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부천공장을 팔지 않았다면 삼성 시스템반도체사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했을 것이다.

역사에 ‘만일’이라는 가정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다. 그럴지라도 한국 비메모리반도체 산업사에는 안타까운 장면이 너무 많다. KEC는 노사분규로, 옛 LG반도체와 하이닉스반도체를 거친 시스템반도체업체인 매그너칩반도체는 외국 헤지펀드 매각 이후 망가졌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한국 반도체산업 알맹이는 더욱 여물었을 것이다. 국내 1호 반도체 회사인 아남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 역사를 계승한 동부하이텍은 이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동부하이텍은 제조 없이 설계만 하는 국내 팹리스반도체업체들이 기댈 유일한 어깨다. 국내 처음이자 유일한 파운드리 전문업체다. 누구에게 팔리든 이 역할만큼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수전 상황을 보니 그럴 가능성이 낮다.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를 꿈꾸는 중국 SMIC나 대만 UMC의 눈에 한국의 작은 팹리스업체들이 들어올 리 없다. 투자 펀드는 아무래도 반도체 사업보다 투자 회수 목적이 크다. 그나마 자동차용 반도체 팹리스인 아이에이가 참여한 컨소시엄에 눈길이 가지만 가격만 따질 채권단 마음을 움직일 지 미지수다.

비메모리반도체 잔혹사를 계속 쓸지, 단절할지 판가름이 날 한 주다. 반도체산업인 마음이 그 어느날보다 비장한 월요일 출근길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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