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이사 후 가전제품 사고 다발, 대책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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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이사한 후 여름에 에어컨을 틀자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나고 뒤쪽 벽이 축축해 에어컨 업체에 AS 요청. 확인 결과 에어컨 배수관이 빠져 물이 벽으로 흘러 벽지와 바닥이 훼손된 상태. 이삿짐센터에서는 에어컨 설치업체와 연락이 되는 않는다는 이유로 보상 거절.

#42인치 벽걸이 TV가 갑자기 떨어져 TV 액정(디스플레이)이 깨지고 밑에 있던 홈시어터와 스피커 손상. 구입처에서는 제조사, 제조사에서는 설치 불량이라며 설치 업체에 떠넘김.

#정수기를 이전 설치한 이 모씨는 가족이 설사 증세를 보임. 확인결과 이전 설치 과정에서 수압이 낮아 펌프를 설치하던 중 정수기가 수도관이 아닌 보일러 물통에 연결. 업체 측에 보상을 요구하자 수질 하자로 인한 질병 발생사실 입증하라며 보상 거부.

#가정집 냉장고 뒷면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 발생. 전기안전공사 현장 확인 결과, 냉장고가 벽에 바싹 붙어 있어 발화 판정. 판매처에 항의하자 제품 문제가 아니라며 책임 회피.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주요 가전제품별 사고 사례다. 이들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셀 수 없이 많은 가전제품의 부적절한 설치로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와 가전업계는 이 같은 사고 발생 요인을 제대로 된 전문인력이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초기 설치) 또는 이삿짐업체(이전 설치)가 비용 최소화를 위해 전문인력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설치 과정에서 중요한 절차나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와 달리 제품 구매 후 설치 과정에서도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주로 인터넷 오픈마켓 등에서 판매되는 저가 이월상품이나 유통상가에서 구입하는 저가 수입가전제품이 해당된다. 비용 부담을 덜거나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판매업체가 전문 설치인력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전(이사) 설치에서도 세탁기·냉장고는 물론이고 에어컨까지 이삿짐센터에 설치를 맡기면서 비전문인력에 의한 부실설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가전제품 설치관련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세탁기와 냉장고는 44.9%와 33.8%, 에어컨은 12.5%를 이삿짐센터에서 직접 설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도의 비용을 내고 전문업체에 이전 설치를 맡기는 때에도 전문설치업체가 아닌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삿짐업계 간 과당경쟁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함량 미달 업체나 여러 단계를 거치는 도급계약을 거쳐 수주한 곳이 설치를 하고 이 과정에서 부실설치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모 가전업체 관계자는 “인터넷이나 유통상가 등에서 구매할 때 50%, 이전(이사) 설치는 85%가 비전문가에 의해 설치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설치업체 간 경쟁은 매우 심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가 38개 에어컨 설치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가공인자격증 취득기사가 책임지고 설치 및 AS’ ‘LG·삼성 전문자격기사가 직접 설치’ ‘국내외 각 회사제품의 기계적 특성에 맞는 최적의 설치기술 노하우가 축적된 회사’ ‘체계적인 선진국형 관리시스템 및 운영체제’ 등 사실이 아니거나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을 내세우고 있다. 현재 에어컨 설치와 관련된 국가공인자격증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이사한 최 모씨는 “에어컨 설치하러 온 사람이 L사 옷을 입고 있어 L사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다녔다’고 얼버무렸다”며 황당해했다.

문제는 피해가 소비자뿐만 아니라 제조업체로도 간다는 점이다. 현재 제조사들은 에어컨 생산부문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제조사가 설치 실명제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설치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자체 기준을 통과할 때에만 자체 설치기사 자격증을 제공한다.

가전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 에어컨 불량을 이유로 AS 요청을 받아 가정집을 방문했다가 실외기를 전혀 통풍이 안 되는 곳에 설치한 것을 본 적이 있다”며 “고객 요청으로 설치업체에 연락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이미 도산했는지 전화가 안 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고객이 끝까지 책임을 요구해 대부분 브랜드 이미지 등 때문에 설치를 해준다”고 덧붙였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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