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금융’이 새 화두로 떠올랐다.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자본이 필요하고 이를 지원하는 체계 마련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24일 광교테크노밸리에서 벤처캐피털(VC), 투자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금융시장의 모험자본 공급 문화를 확산할 것”이라며 “창의와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을 적극 발굴해 금융 자금이 유입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창업기업에 투자하거나 벤처펀드를 운영하는 벤처캐피털 업계가 느끼는 현장 체감온도는 여전히 냉골이다. 모험자본의 핵심 고리역할을 맡고 있지만 정책이나 생태계 건강성이 10년 전보다 되레 후퇴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금융가 벤처펀드 투자 ‘요원’…세제 지원은 ‘후퇴’
지난 7월까지 벤처캐피털 신규 투자 금액은 83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4% 늘었다. 하지만 기업 당 평균 투자금액은 17억1000만원으로 5년치 평균인 17억40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벤처캐피털 업계의 벤처 투자액 증가가 정부의 기대만큼 잘 이뤄지지 않아 민관 공동의 대책 수립이 진행되고 있다.
업계가 꼽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금융기관을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벤처펀드 출자가 수년 째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양도차익 비과세 대상 벤처펀드 출자자를 제한한 이후부터 VC를 제외한 금융기관 투자가 미미하다. 양도차익 비과세란 은행·증권 등 금융기관이 벤처 펀드에 출자해 얻는 이익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정부는 벤처 육성과 모험자금 유치를 위해 2000년 초까지 개인과 연기금, 금융기관에 양도차익 비과세 지원을 했다. 하지만 2002년 세 수입을 늘리려고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금융기관 등을 세제혜택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과적으로 벤처펀드의 투자에서 가장 큰 자금 여력을 가진 은행·증권 등 금융기관과 민간법인이 수익성을 따져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줄어든 금융기관 벤처펀드 출자비중은 2008년 10.2%였으며 2012년 13%로 다소 올랐다가 지난 5월 기준 11.7%로 다시 내려 앉아 10% 전후에 머물고 있다. 5월 기준 일반법인 출자비중도 4.2%에 그치고 있으며 정책기관의 출자비중도 13.5%에 불과하다.
이종갑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벤처펀드 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제도적 보완이 더 필요하며 금융기관의 투자를 늘리기 위한 양도차익 비과세 혜택의 부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식양도차익 비과세는 현행 법인세법 시행규칙이 지정한 10개 기금법인(공무원연금관리공단,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 신용보증기금 등) 및 9개 공제사업법인(정보통신공제조합, 과학기술인공제회 등)에만 적용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기관의 벤처 투자 인센티브 제도는 사실상 없어졌다고 보면 되는데 벤처펀드 시장은 가만히 놔둬서 되는 시장이 아니다”며 “벤처펀드에 은행 등이 출자할 때 양도차익 비과세 혜택이 없어지면서 이제 코스닥·코스피 시장에서 더 어려운 투자로 양도차익을 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펀드의 내부수익률(IRR) 평균치가 4.7%로 코스닥·코스피 지수 수익률보다 높아져 투자 위험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VC업계, 세제지원 확대 건의…정부는 ‘글쎄’
벤처캐피탈협회는 기관투자자와 일반 법인이 벤처펀드에 출자할 경우 주식양도차익 비과세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을 중소기업청을 통해 기획재정부에 공식 건의한 상태다. 주식양도차익 비과세가 펀드 건전성을 높이고 기관과 일반법인의 벤처펀드 출자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2002년도 이전에 주식양도차익 비과세 대상 기관투자자에 해당한 은행·증권 등 금융기관을 비롯해 한국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농업협동조합중앙회·종합금융회사·보험사업자로 주식양도차익 비과세 대상 기관투자자를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주식양도차익 비과세 이유가 투자조합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면 투자조합에 참가하는 조합원에 대해 선택적 조세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 입장이다.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벤처캐피털·기관투자자·기금운용법인·엔젤투자자 등이 창업자와 벤처기업에 투자한 주식의 양도차익 비과세, 배당소득 비과세, 증권거래세 비과세 등의 세제지원을 영구화돼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하다. 이들 비과세 정책이 벤처투자 활성화에 매우 중요한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일몰시한으로 규정돼 있어 한시적 세제지원책이란 점이 문제다. 2~3년 단위로 연장되며 오는 12월 말 재연장을 앞뒀다.
이 부회장은 “기관투자자의 출자를 유인하고 초기투자를 확대해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벤처캐피털의 세제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며 일몰시한 조항이 아닌 영구 조항으로 편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업계의 적극적인 제안에 따라 기획재정부에 건의해 모험자본 육성을 위한 금융기관의 양도차익세 면세 등 혜택이 정부에서도 전향적으로 검토되고 있으나 지난해 엔젤투자자 세금지원 등 중소기업 관련 지원이 많이 이뤄져 VC 지원이 순연된 상태”라며 “기재부에서도 시간을 두고 세제 지원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몰 조항의 영구화에 대해서는 다른 조세특례법 조항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중소기업청과 기획재정부에서도 유보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