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을 대혼란에 빠트린 이번 KB사태는 우리나라 금융산업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계기가 됐다. 낙하산 인사에 관치금융, 금융당국의 리더십 부재와 전문성 결여, 왜곡된 지배구조에 거수기 역할만 해 온 금융사 이사회 등 누적된 문제가 한꺼번에 곪아터졌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3회에 걸쳐 사태의 문제와 개선점을 진단한다.
◇글 싣는 순서
(상)관치, 지주사 체제 재점검 필요하다
(중)금융당국부터 개혁해야
(하)KB, 강도 높은 내부 혁신 나서라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불거진 KB사태의 근원에는 금융권의 낙하산 인사 관행과 정착하지 못한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가 있다.
KB금융은 황영기, 어윤대 전 회장에 이어 임영록 회장까지 외부 출신이 회장직을 맡아왔다. 대주주가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정치권이나 정부의 영향을 받은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다 보니 정권에 따라 임기도 들쑥날쑥이고 외부 영향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당국 입맛에 맞는 사업만 강화하는 병폐도 나타나고 있다.
낙하산 인사는 내부 조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리더십을 갖기 힘들다.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무리한 결정을 하기 쉽다. ‘제2의 KB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뚜렷한 근거 없이 금융당국이 금융사 CEO 임명과 퇴진에 개입하고 경영에 간섭하는 ‘관치금융’을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갈등을 빚어온 임영록 회장은 재정경제부 2차관을 거쳤고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한국금융연구원 출신이다. 배경이 다른 낙하산 인사가 회장과 행장을 맡으면서 치고받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당국이 금융사에 CEO를 누구로 앉히느냐부터 일부 경영 일선에까지 간섭하는 일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금융회사를 사업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수단으로만 보는 정 인식도 개선이 필요하다.
임수강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낙하산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내부에서 회장이나 행장을 키우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이사회 운영이나 여러 추천위 구성에서도 보다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도 측면에서 CEO의 자격요건에 금융회사 경영에 필요한 전문 능력을 포함시켜 엄격히 규정하거나, CEO승계 프로그램을 이사회 상시업무로 구축하는 것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지주사 체제도 전면 재점검이 필요하다.
KB사태는 제왕적 권위를 가지려는 회장과 실제 사업을 맡은 행장이 대립하며 불거졌다. 회장과 행장의 정확한 역할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옥상옥 지배구조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미국은 겸직이 많고, 유럽은 분리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등 정답은 없다”며 “다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고 지주회장 평가에 은행 이외 보험, 증권을 키우는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내부 갈등이 불거져도 역할을 못하는 이사회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사회 구성과 역할 등도 점검 대상이다. 이번 KB사태는 지주와 은행 내부시스템에서 충분히 조율될 수 있었다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회장과 행장이 대립하고 행장이 내부 문제를 금융당국에 고발하기까지 이사회는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었다. 한편 KB금융지주 이사회는 17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해임을 의결했다.
[표]KB사태로 드러난 금융시스템 문제점
(자료: 업계)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