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그냥 대기업에 취직해”
국내 ‘도타2’ 리그 우승팀 ‘MVP피닉스’가 처음 결성할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들은 어렵게 입학한 대학을 뒤로 하고 세계 대회에서 한국팀의 실력을 알리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카이스트, 토론토대, 시드니대 등에서 공부하다 프로게이머의 길로 들어섰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큰 인기를 얻은 2000년대 초반에는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주 연령층이 10대였다. 정확한 판단력은 물론이고 빠른 손놀림이 우승의 관건이었기에 10대 선수들의 돌풍은 국내 스타리그 저변을 확대하는데 일조했다. 임요환, 홍진호 등 당시 10대에 프로게이머에 입문한 유명 선수들은 지금도 e스포츠 시장 성장과 인지도 확대에 크게 기여하는 유명 인사다. 반면 20대 프로게이머의 데뷔 사례는 오래되지 않았다. 전국 규모 PC방 대회, 아마추어 리그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실력있는 일반 사용자가 프로게이머로 성장하는 사례가 최근에야 많아졌다.
국내 ‘도타2’ 리그 우승팀 ‘MVP피닉스’는 도타2가 좋아서 뭉친 실력파가 포진했다. 토론토대학에 다니던 박태원 선수(팀장, 아이디 MVP March)가 도타2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팀원과 후원단을 직접 모집해 결성했다. 팀 결성 후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휴학을 하고 연습에 매달리며 전문 팀으로 성장해왔다.
착실하게 대학에서 전공 공부를 하던 자녀가 난데없이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응은 어땠을까. 대부분 심한 반대를 겪었다고 한다. 박태원 선수는 “원래 게임을 좋아했지만 대학 졸업 후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하자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타2 프로 선수로 성장하고 싶은 미래 비전을 말씀드리자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됐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나와서 왜 프로게이머를 하느냐, 그냥 취직이나 하라고 하셨다”며 “지금 최선을 다해보라며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시고 친구들도 워낙 게임을 좋아했으니 잘 됐다며 응원해준다”고 뿌듯해했다.
KAIST 졸업생 이승곤 선수(아이디: MVP Heen) 역시 남다른 도타2 사랑이 진로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프로팀 선수 생활을 한지 1년 남짓 됐지만 도타2를 10년간 즐겨온 열혈 사용자다. 일반인 신분으로 한국 국가대표가 돼 도타2 경기에 출전한 경험도 있을 정도다. 이 선수는 “처음 팀을 꾸릴 당시 모두 도타2를 취미삼아 하면서 막연하게 프로게이머를 꿈꿨다”며 “기회가 생기자 어렵지 않게 진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수명이 짧고 부모님 세대가 이해하기에는 e스포츠가 아직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다”며 “내가 도타2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계시지만 여전히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길’을 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도타2만큼 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를 찾지 못했다”며 “앞으로 세계 대회에서 한국 도타2팀이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내놨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