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임영록 KB 회장님, 이제 그만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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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정말 억울할 것 같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실행에 옮기지도 않은 죄(주전산시스템 유닉스 전환에 따른 위험 발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3개월간 직무정지도 모자라 검찰로부터 수사를 당하고 해임 위기까지 몰렸으니 말이다.

징계를 받은 임 회장이 만의 하나 업무에 복귀해 임기를 마친다 해도 이후 4년간 금융사의 임원이 될 수 없다. 사실상 금융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나는 셈이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그가 버티면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KB금융 임직원들을 범죄자로 만들 수 없다 △부당하게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사태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 △회사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 등은 그가 금융지주 홍보팀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타깝지만 임 회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우선 이 사안은 피의자인 임 회장이 밝힐 수도 없고, 그가 현직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제3자가 나서더라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 수가 없다. 금감원의 조사가 주먹구구로 불합리했다면 검찰에 가서라도 떳떳함을 밝히는 것이 맞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의종군’ 자세가 필요하다.

더 이상 KB금융을 벼랑 끝으로 몰아서도 안 된다. 과연 금융당국이 으름장만 놓고 있는 것인지 상황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물론이고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자리’를 내놓고 이번 사안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당국의 수장으로서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KB금융을 조기 안정화시키지 못한다면 그들 역시 책임을 져야 할 판국이다.

임 회장이 버티면 버틸수록 KB에 대한 당국의 압박은 더 거세질 것이다. LIG손보 인수 등 금융당국과 풀어야 할 굵직굵직한 현안이 첩첩산중인 KB로서는 이 같은 관계가 도움이 될 리 없다.

냉정하게 한번 되짚어 보자. 임 회장은 ‘KB인’이 아니다. 앞서 사퇴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도 마찬가지다. KB를 ‘리딩뱅크’로 만들기 위해 20년, 30년 땀흘려온 진짜 KB인들에게 두 사람은 엄연히 ‘굴러온 돌’이다. 그런 두 사람이 반세기가 넘게 다져온 KB의 명성을 한순간에 망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도 생각해 보자. 지주사 출범과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왜곡된 지배구조를 타고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 간의 세력 싸움 아니던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힘을 등에 업은 인사들이 내려와 주인 행세만 하고,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는 악순환이 곪아터진 것 아닌가.

KB를 이 지경으로 만든 금융당국도 큰 책임이 있다. 초기 대응을 잘못 했을 뿐 아니라 부여받은 권한도 적절하게 쓰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로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려 혼란만 부추겼다. 관치금융의 ‘적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금 2만5000여 KB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루빨리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또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임 회장과 이 전 행장, 그리고 이들을 KB에 내려 보낸 ‘윗선’에 대한 원망으로 잠 못 이룰 것이다.

임 회장이 물러나는 것이 맞다. 그것이 KB를 살리고 자신도 살리는 길이다.


정지연 경제금융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