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제작 인정기준을 놓고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는 극명하게 입장이 갈렸다. 외주제작사는 현행 기준을 바꿔야 새로운 방송 관행이 정착된다고 주장했다.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현행 외주제작인정 기준이 2012년 만들어졌지만 방송사 측의 입맛대로 제정돼 실효성이 낮다”며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드라마제작사들이 외주제작인정기준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이유는 외주제작비율은 높아졌지만 제작사의 살림은 악화됐기 때문이다. 박 국장은 “지난 1991년부터 외주정책이 시작됐지만 이후 드라마나 예능 방송콘텐츠 제작을 통해 돈을 번 곳은 매우 드물다”며 “이는 방송사들이 제작단가를 낮추는 목적으로 외주를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청자를 위한 방송콘텐츠 다양성과 한류확산을 위해서라도 외주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겨울연가나 별 그대, 상속자들로 대표되는 한류 드라마를 만든 주역은 외주제작사”라며 “현재의 방송사 시스템으로는 질 좋은 콘텐츠 생산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외주제작사가 흥행 드라마를 만들고도 수익을 거둘 수 없는 것도 갑의 위치에 있는 방송사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 국장은 “방송사가 편성을 앞세워 계약을 하면서 저작권 양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작권을 넘기는 것이 관행”이라며 “외주제작 인정기준에 저작권 비율을 넣으면 이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능, 다큐, 교양을 제작하는 독립제작사도 비슷한 의지를 내비쳤다. 배대식 독립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독립제작사가 열악한 상황에 처한 것은 방송사 관행에 문제가 있다”며 “인정기준을 바꿔야 방송계 관행이 바뀐다”고 밝혔다.
반면 방송사는 현행 기준을 바꿀 이유도 없고 유지할 명분이 없다면 폐지하는 게 오히려 옳다고 맞섰다. KBS 한 관계자는 “그동안 현행 인정기준을 제대로 이행했는데 현행 인정기준 2년이 겨우 넘은 상황에서 유명무실하다고 하면 이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을 경계로 의무비율을 반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현행 법률에 따르면 저작권은 사적계약에 따라 소유·양도하게 돼 있다”며 “표준계약서 이행 여부 점검이나 저작권을 외주제작 편성의무비율에 반영하는 것은 법체계를 흔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료 미지급 등 불합리한 외주제작사의 관행도 제기했다. 그는 외주제작사와 계약을 맺은 출연자가 출연료 미지급이 발생하면 방송사가 책임져야 하는데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외주제작사의 부실을 떠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MBC 한 관계자는 “지난 1991년부터 시작된 외주정책으로 외주제작 의무비율 반영, 광고 규제 등 여러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적 계약인 저작권을 통해 의무를 지우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밝혔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