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현장이 답]기술기업 목소리 담아 `한국의 구글` 육성한다

기술금융을 바라보는 현장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절실했다. 정부가 창조경제 새 혈맥으로 기술금융을 부흥하겠다며 다가섰지만, 기업들이 일선 금융사에 느끼는 아쉬움과 경계심은 여전했다.

꼭 필요한 곳에, 제 때 자금이 투입되지 않고, 제대로 된 기술가치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강했다. ‘코카콜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도 금융사들이 제품을 상용화하는데 걸리는 ‘땀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판교 테크노밸리, 대구 테크노파크, 전북대 창업보육센터 등 전국 기술산업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과 예비 창업가들은 금융당국이 내놓은 기술금융 활성화대책이 여전히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사각지대가 있다고 비판했다. 현장이 느끼는 제약을 걷어내야만 미국의 실리콘밸리, 프랑스의 앙티폴리스 같은 기술집약형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할 수 있고, 구글 같은 글로벌 기술기업을 키워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등 융합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 기업인들은 기술금융이 보다 현장 밀착형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을 배급했던 장경익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대표는 “한국 영화산업은 체질이 약해서 지원해야할 분야가 아니라, 창조산업을 이끄는 매력적인 산업 투자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도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중국배급사에 위협을 받고 있지만, 자체 콘텐츠로 시장에서 자생할 수 있는 문화기업도 기술금융을 통해 육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벤처캐피탈 투자가 전부라고 비판했다.

모바일게임 사업에 진출한 권이형 엠게임 대표는 “게임산업은 이제 해외 진출만이 살길인데, 아직도 국내 규제에 묶여 있다”며 “재무구조가 취약한 게임사에게는 민간은행이 대출상환을 조기로 단축하거나 대출 금리를 올리는 경우가 허다해 대출부문에 융통성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스타트업에 대한 보증기금사의 보증료 부담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

빅데이터 솔루션 사업을 하고 있는 송성환 다음소프트 대표는 “기술개발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비가 전제되야 하는데, 소프트웨어 분야를 보면 민간은행의 대출문턱이 매우 높은 게 현실”이라며 “고용창출이 많은 SW산업에는 담보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구제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광태 퓨처시스템 대표는 “기술금융 활성화의 실행전략으로 자금 회수기간을 금융사들이 연장해주거나 투자회수기간을 아예 없애는 금융상품이 절실하다”고 제안했다.

연구소기업을 운영 중인 손미진 수젠택 대표는 “기술금융이 데스밸리(Death Vally:창업 초기 겪는 위기)를 넘을 수 있는 맞춤형 금융지원형태로 발전해야 한다”며 “3년차 데스밸리를 넘지 못해 연구개발(R&D) 기업들이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주저앉는 일이 다반사”라고 전했다. 하이테크 신기술을 보유한 연구형 기업은 조금 다른 생태구조를 갖고 있는 만큼 이에 맞춘 정책과 기술금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 때 자금이 돌지 않아 성과물을 해외에 통째로 빼앗기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동연 일양약품 대표는 “신약개발 임상 1단계에만 약 1000억원의 돈이 소요되는데 한국에선 이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며 “바이오 분야는 개발기간이 길지만 한번 제품 상용화에 성공하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장기 저리의 기술금융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학필름을 제조하는 김형규 미래나노텍 상무는 “소재 부문에서 중국과 일본 샌드위치에 갇힌 소재기업이 많다”며 “해외 가격 후려치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금융 자금이 적시에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스마트가전 모듈사업에 뛰어든 유창현 이젝스 대표는 “국가 R&D 결과물에 대한 기술담보대출이 있으면 좋겠다”면서 “정부가 지원하는 R&D자금은 시제품을 만드는데 그치는 수준이어서 양산이나 마케팅까지 커버리지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 R&D 과정을 수행하는 기업이나 과제에 대해 별도의 기술금융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부품소재의 메카로 불리는 대구 소재 기업들도 보다 현실적인 기술금융 지원체계를 갖춰야한다고 지적했다. 김덕주 대광소결금속 대표는 “장기보증 이용고객에 대해 보증사들이 보증을 축소한다”며 “통상 창업 후 10년이 지나야 매출이 상승하는 구조인데,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단계에서 보증기금사들이 오히려 보증을 축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 성장단계별로 자금이 필요한 시점, 또한 장기 이용 기업에게는 그에 맞는 보증체계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김상우 세아씰텍 대표는 기술 고급인력 채용에 따른 지원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을 위해 고급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채용 인력이 바로 성과창출을 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며 “금융당국이 이들 기술 인력이 성과를 내는 시간까지 별도 지원을 해주는 제도를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운용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제갈희재 제이에스알 대표는 “정확한 기술평가를 하려해도 자금이 너무 많이 든다”며 “특허 평가비용을 낮춰달라”고 설명했다.

의료기기 제조사업을 하고 있는 심기봉 덴티스 대표도 “의료기기 하나 인증하는데 2억원의 해외인증 비용이 소요된다”며 “해외인증 비용을 국가에서 저리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기술금융 실행전략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동차 부품 2차 벤더사인 김은대 엠디엔 대표는 “업력 10년 미만의 작은 소기업은 리스크 불확실성이 커 기술력 개발 투자에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1차 제조사의 추천, 거래 실적으로 긴급자금을 2차벤더사에 지원할 수 있는 구제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정된 연구원 직군을 버리고 창업한 농식품 기업 아람농장 윤선주 대표는 “실험실, 시제품, 파일럿, 양산단계별로 기술금융 자금이 맞춤형으로 지원돼야 한다”며 “대학 실험실 내에서 잠자고 있는 기술이 비일비재하다”고 비판했다.

전주 기술금융 간담회에 참석한 최규원 서린테크 대표는 “벤처기업 지원 내용 중 세제부분의 경우 대상과 기간이 제한돼 있다”며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정수 에이엔케이 대표는 “창업 초기기업들도 수출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별도의 수출지원 기술금융 부흥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함께 1박2일간 전국 순회 현장 방문에 동행한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 진웅섭 정책금융공사 사장,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김영덕 성장사다리펀드 자문위원장 등 정책금융기관 대표들은 “금융사와 현장의 간극이 아직도 상당한 것을 체감한다며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수용해 보다 현실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판교·대구·전주=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